디지털진안문화대전 > 진안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근대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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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19세기 중엽부터 조선 사회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민중 세력의 힘이 성숙됨과 동시에 일본과 서구 열강 세력의 침투 및 일제 강점기에 직면하였다. 진안 지역은 이 시기 동학 농민 운동 준비 단계에서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의병의 중심지였다. 1895년(고종 32) 5월에 반포된 칙령...

  • 용담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담면, 정천면, 안천면, 동향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용담군은 1895년(고종 32) 옛 용담현에 설치한 행정군(行政郡)으로 1914년 군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에 합쳐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용담(龍潭)은 현의 동남쪽에 두 물이 서로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취...

  • 동학 농민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4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동학 교도와 농민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 동학 농민 운동은 조선 후기 위정자의 수탈과 탐욕에 맞서 1894년 동학 교도와 농민이 합세하여 전라북도 고부 지역을 시작으로 진안과 용담 지역 등 전국으로 확산된 혁명 운동이다. 신분제 사회와 봉건적 지배 체제에서 수탈을 당하던 조선의 백성은 1876년 개항 이후 일본과 청나라 및 서...

  • 용담 전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용담 전투는 상조림장 전투·진안 전투로 이어지는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이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의 봉기 이후 진안 지역에서는 11월부터 동학 농민군과 관군·일본군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본래 용담현은 작은 고을로 1894년에 동학 농민군이 봉기한 이후 동학 농민군에게 점령당하였으나 8월 이후 동학...

  • 상조림장 전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일대에서 최초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의 전투. 1894년 11월 8일과 9일에 걸쳐 이루어진 전투 이후 동학 농민군이 용담을 함락시키자, 백목성태랑(白木誠太郞)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군이 조선 정부의 교도대와 함께 용담 지역으로 출진하였다. 이들은 곧바로 정천(程川)으로 진격하여 동학 농민군과 교전하였다. 11월 13일 밤에 동학 농민군은 현...

  • 진안 전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관군의 전투. 1894년 12월 10일 농산읍(農山邑)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한 동학 농민군이 진안 방향으로 퇴각하자 백목성태랑(白木誠太郞) 중위가 지휘하는 일본군이 이를 포착하고 진안으로 진격하였다. 일본군이 고산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배후에 있는 진안의 동학 농민군을 사전에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 남학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남학 교도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사회 운동. 남학 운동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발생하자 후천개벽의 시운이 도래했다고 여긴 진안 지역의 남학(南學) 교도 수천 명이 모여 전개한 사회 운동이다. 남학은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로부터 시작하여 부연(芙蓮) 이용래(李龍來)와 일수(一守) 이용신(李龍信)을 거쳐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으로 계승된...

  • 금강 불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에 있는 운장산(雲藏山) 일대에서 활동하였던 민족 종교. 김용배(金庸培)[1876~1941]는 1885년경 김치인으로부터 남학의 도를 전수받았다. 이후 1894년 10월 17일에 김치인은 제자 명봉 김용배를 불러서 의발을 전수해주고 더욱 힘쓰라고 격려하였다. 김치인이 1895년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자 제자들 사이에 교통 전승을 둘러싼 분규가 일어났는데 김...

  • 의병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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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개항기의 의병 운동은 크게 제1차 의병 전쟁[1895~1896년]과 제2차 의병 전쟁[1905~1910년]으로 나눌 수 있다. 진안 지역에서 제1차 의병의 활동 기록은 없고 제2차 의병에 이석용을 비롯하여 문태수·유지명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정미조약으로...

  •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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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마이산에서 결성된 의병 부대.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湖南 義兵 倡義 同盟團)은 1907년 9월 이석용(李錫庸)이 주도하여 진안 마이산에서 결성되었다. 이석용은 마이산에서 고천제를 거행한 후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어 본격적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이석용도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석용은 9...

  • 마이산 고천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 용암에서 이석용 의병장이 호남 창의 동맹단을 결성하고 하늘에 지낸 제사. 마이산 고천제는 1907년 9월 12일 이석용 의병장이 임실, 진안, 곡성, 함양, 순창, 장수, 남원 등지에서 의병들을 진안 마이산으로 집결시켜 창의 고천제(告天祭)를 거행한 것이다. 마이산 아래 용암(龍巖) 위에 제단을 쌓고 그 위에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湖南義兵倡義同盟團)’이...

  • 진안 사립 문명 학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있었던 근대 교육 기관.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학교 설립 분위기가 확산되고 기존의 교육 기관이던 진안 향교가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진안 지역에서는 새로운 학교의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새로운 학문을 수용하려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진안군청 주사 오정열이 주도하여 진안 향교의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여 진안...

  • 화동 학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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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 병자호란으로 임금이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김중정(金重鼎)은 한양을 떠나 주천면 주양리 주자천 유역에 와룡암(臥龍庵)을 건립하여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와룡암은 전라북도 동부 지역 최초의 학당으로 300여 명의 제자들이 배출되어 기호학파의 맥을 이었다. 김중정의 9대손인 김태현(金泰鉉)은 와룡암의 전통을 이어 1...

  • 용강 학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08년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 을사조약 이후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용담 향교의 전교 임병도(林炳棹)가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여 용강 학교를 설립하였다. 용강 학교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근대 학교의 설립이 추진되고 향교가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상황에서 1906년 소학교령이 폐지되고 보통학교령이 공포...

  •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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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책을 융합한 식민 정책을 추진하였다. 진안 지역에서는 일제의 가혹한 통치와 수탈에 저항하여 3·1 운동에 동참하였고, 이후에도 다양한 농촌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일제 강점기 진안 지역의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는...

  • 독립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근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청일 전쟁 이후 경술국치까지 한국민은 일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 분투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3·1 운동은 일제의 가혹한 무단 통치 아래에서 신음하던 한국민의 거족적인 항일 운동이었다. 일제 강점기 진안 지역에서는 의병 항쟁을 통해 다져진 애국심과 투쟁 의지를 바탕으로 나라를...

  • 임자동 밀맹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2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 1912년 진안 지역의 이석용(李錫庸)과 구례 지역의 정찬석을 비롯하여 하동·곡성·남원·전주·임실·진안 등의 인사 약 20명이 모여 결성한 비밀 결사이다. 이들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의 항일 운동가들과 연계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임자동 밀맹단은 이석용이 국권 회복을 위해 과거에 의병 활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을 규...

  • 3·1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3월 25일~4월 중순까지 진안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진안 지역의 만세 운동은 3월 25일의 진안읍 장날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주천면·마령면·성수면 등으로 이어졌다. 만세 운동이 끝난 후에도 그 영향을 받은 지역민들 다수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본은 1910년에 국권을 강탈한 후 폭압적인 무단 통치를...

  • 소작 쟁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소작 농민들이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전개한 농민 운동. 전라북도는 전통적으로 농업 중심지였고 일제 강점기 일제의 식량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 중의 하나였으므로 소작 쟁의도 매우 빈번하고 격렬하게 일어났다. 50~60%에 달하는 소작료와 농사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했던 소작인들은 전체 수확의 70~80% 가량을 수탈당했고 중간 관리자들의 착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