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523
한자 獨立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정의]

근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

[개설]

청일 전쟁 이후 경술국치까지 한국민은 일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 분투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3·1 운동은 일제의 가혹한 무단 통치 아래에서 신음하던 한국민의 거족적인 항일 운동이었다. 일제 강점기 진안 지역에서는 의병 항쟁을 통해 다져진 애국심과 투쟁 의지를 바탕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한 임자 동밀맹단이 결성되었고, 3·1 운동이 벌어지자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의병 활동]

1907년 진안 지역의 우국지사들이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이석용(李錫庸)을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고 마이산에서 고천제를 올린 뒤에 진안으로 진격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또한 문태수·전해산·유지명 등도 의병을 이끌고 활발히 활동하였다.

[임자 동밀맹단]

진안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일제의 남한 대토벌로 의병을 해산했던 이석용은 경술국치 이후 1911년 3월에 몇 명의 옛 동지들을 모아 비밀 조직을 결성하고 일본에 건너가 천황을 암살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석용은 1912년에 다시 비밀 결사대인 임자 동밀맹단(壬子 冬密盟團)를 조직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중국으로 가기 직전에 이석용이 군량과 자금 지원을 약속했던 정동석의 고발로 체포됨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3·1 운동]

진안 지역에서는 1919년 3월 25일 진안읍의 장날에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오전부터 수백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이루어 행진을 하자 장꾼들도 여기에 합세하였다.

4월 3일에는 주천면 주양리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 만세 운동을 시작하여 그날 밤 10시 무렵에도 다시 주민과 학생 60여 명이 마을 앞에서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4월 6일에는 마령면 평지리 뒷산에서 오기열·전영상·김귀영·황해주 등이 주도하여 주민 수백 명이 만세를 불렀는데 헌병에 의해 제지당하였다.

4월 12일에는 성수면 도통리에서, 13일에는 마령면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는데 특히 13일은 마령면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미리 운동을 계획하였던 오기열·전영상 등에 의해 운동이 크게 확대되었다. 마령면에서의 만세 운동 이후에도 진안 지역의 인사들은 계속 운동을 계획하며 독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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