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검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534
한자 豫備檢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6월 26일 - 전라북도 진안군 예비 검속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7월 20일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서 경찰이 예비 검속자들을 처형
성격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인물/단체 국민 보도 연맹

[정의]

6·25 전쟁 초기에 진안 지역에서 이루어진 예비 검속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피해 사건.

[역사적 배경]

이승만 정부는 과거 좌익 활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쉽게 통제·관리하기 위해 1949년부터 국민 보도 연맹을 조직하여 이들을 모두 가입시켰다. 그런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은 북한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되어, 전쟁 초기 군경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검속과 처형이 이루어졌다. 전쟁이 기습적으로 벌어졌으므로 서울 지역에서는 군경에 의한 예비 검속과 처형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지만 남부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피해자 수가 점점 증가하였다. 특히 군경의 후퇴 경로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피해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비 검속으로 인해 처형된 사람들은 국민 보도 연맹원, 즉 과거의 좌익 활동가들이라고 하지만, 국민 보도 연맹원 명단이 남아 있지 않고 예비 검속도 정상적 절차 없이 즉결 처분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실상에 대해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경과]

기습적으로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해 국군과 경찰은 급히 후퇴하면서 좌익 사상가 및 활동가와 좌익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미리 파악하여 연행·구금하였다. 예비 검속은 1950년 6월 26일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국민 보도 연맹원을 비롯하여 좌익 활동으로 형무소에 수감되었거나 좌익 사상을 지녔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군에 합류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되어 후퇴하던 군경에 의해 살해당했다. 민간인 살해는 1950년 7월 7일부터 23일까지 17일 동안 군경의 후퇴 경로를 따라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전라도·경상도 지역이 주요 피해 지역이었다.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당시 전주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 혐의자를 비롯하여, 군산·김제 등에서 대량 학살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전주에서는 전주 형무소 수감자 1천 명을 포함한 1,121명이 전주 형무소 뒷산 공동묘지와 황방산 등에서 학살되었음이 밝혀졌다. 현재 이들의 출신 지역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안 지역에서는 경찰이 약 30명의 예비 검속자를 구금하고 있다가 후퇴하기 직전인 7월 20일에 백운면 신암리에서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결과]

예비 검속에 대하여 2000년대 이후 진상 규명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확실한 진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는 정부가 진상 규명 작업을 전면 중단한 상황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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