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대기[강정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924
한자 龍大旗-江亭里-
이칭/별칭 강정리 용대기,강정리 농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35년연표보기 - 용대기[강정리] 제작
보수|복원 시기/일시 1924년 - 용대기[강정리] 보수
성격 농기(農旗)
크기(높이,길이,너비) 500㎝[가로]|345㎝[세로]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마을에 보존되어 있는 농기(農旗).

[개설]

강정리에는 유서 깊은 용대기와 실명기가 보존되어 있다. 용대기는 만두레와 기우제 때에만 사용된다. 만두레 때는 마을 앞에 용대기를 내걸어 마을에 두레가 났음을 주위에 알렸으며,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내동산에 직접 용대기를 가지고 올라가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강정리 용대기는 1835년에 제작되고, 1924년에 보수한 기록을 연조(年條)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형태]

강정리 마을의 용대기는 그 크기도 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작된 천의 종류와 깃발을 묶는 새끼줄의 재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작과 보수 연도가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용과 거북, 그리고 잉어를 그려 넣은 그림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 선명하고, 그 솜씨 또한 뛰어난 수준의 명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용대기의 크기는 가로 500㎝, 세로 345㎝, 대각선 길이는 무려 650㎝에 달한다. 따라서 용대기를 매단 깃대의 크기는 이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용대기 상하의 가장자리에는 하늘색으로 채색된 지네발이 달려 있는데, 지네발 아래쪽의 넓이는 각각 32㎝이며, 위와 아래에 각각 14개씩 달려 있다. 우측 천의 마감을 볼 때 우측에는 본래부터 지네발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대기의 깃발 왼쪽에는 위아래로 하늘색 띠가 좌우의 흰 천 사이에 바느질되어 있는데, 그 위에 다음과 같은 연조가 기록되어 있다.

창시(創始) 도광(道光) 십오년(十五年) 삼월(三月) 일(日)

갑자(甲子) 칠월(七月) 일(日) 수보(修補)

전북(全北) 진안(鎭安) 마령(馬靈) 강정리(江亭里) 용대기(龍大旗)

도광 15년은 서기 1835년이어서 기의 처음 제작 연도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이 용대기는 갑자년 7월에 보수되었는데, 서기로는 1924년에 해당된다.

[특징]

강정리 용대기의 특징은 기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용대기에는 깃대 쪽으로 머리를 향한 커다란 황룡 한 마리가 머리 위쪽 발에 여의주를 쥐고 하얀 구름 속에서 용트림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깃발의 왼쪽 상단 즉, 용의 머리 쪽 위에는 커다란 청거북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이 거북의 머리는 또 용머리를 닮았다. 깃발의 오른쪽 상단에는 금방이라도 헤엄칠 것 같은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용이나 거북, 잉어는 모두 물과 관련이 되거나, 알을 대량으로 방사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물은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여서 물을 관장해 주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긴 신성물이다. 또 이들 동물은 알을 많이 낳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서 풍요와 다산에 대한 염원까지 담겨 있다.

[의의와 평가]

강정리의 용대기는 규모나 채색 면에서도 뛰어난 농경 유물이지만 무엇보다 제작 연도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더 큰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강정리 마을의 용대기와 실명기에 대한 보존 대책과 활용 방법에 대한 연구가 시급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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