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리 도깨비 제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660
한자 盤松里-祭祀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98년경 - 반송리 도깨비 제사 중단
의례 장소 반솔 나무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지도보기
연행 마을 반송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초 날받이
신당/신체 반송(盤松)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반송 마을에서 정월 초에 여성 중심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에서 지내는 반송리 도깨비 제사는 마을에 도깨비들이 불을 낸다고 해서 유래된 화재막이 의례이다.

[연원 및 변천]

반송리 도깨비 제사는 여성들의 의례이자 축제이다. 여자들끼리 날짜를 정하고 걸립도 하며 의례도 진행한다. 도깨비 제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통 시대에는 특히나 더 큰 재앙이었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예전에는 대부분의 집이 목조이고 초가지붕인데다가 이웃집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또한 난방과 취사를 모두 아궁이에 장작이나 볏짚을 땠기 때문에 화재에 매우 취약하였다. 게다가 한 지점에 화재가 발생하면 도깨비불처럼 불이 이리저리 옮겨 붙어 마을 전체로 번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화재를 일으키는 주범이 불의 상징인 도깨비라고 여겼다. 화재는 전염병과 함께 가장 큰 재앙이었고, 주민들은 화재가 도깨비들의 장난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함과 동시에 도깨비들이 싫어한다는 쇳소리를 내면서 그들을 물리치려는 주술적 행위를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반송리 도깨비 제사는 별도의 신당이나 신체는 없고, 반송 마을 전체를 돌아다니며 지낸다.

[절차]

반송리 도깨비 제사는 정초에 날을 받아서 지내는데 대개는 음력 정월 7일이나 8일에 지낸다. 날을 받은 뒤에는 제물을 장만할 깨끗한 집을 선정하는데 이 집을 ‘밑집’이라고 한다. 날을 받은 뒤로 마을에 궂은 일이 발생하면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

제일 사흘 전에는 십시일반으로 걸립을 한다. 걸립은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함인데 쌀과 팥 등 주로 곡물이 많이 걷힌다. 걸립한 곡물 중 일부는 돈으로 바꿔서 제수 용품을 구입한다. 제의 당일에는 각자 저녁 식사를 한 후 밑집으로 모인다. 이어서 제물을 하나씩 들고 제의 장소인 반솔 나무 아래로 옮긴다. 떡은 시루째 올리고, 밥도 솥째 올린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묵은 반드시 올려야 하는데 붉은 메밀묵이다. 떡도 붉은 팥떡이고 붉은 팥죽도 반드시 끓인다.

제물을 진설한 뒤에는 꽹과리를 비롯하여 냄비 뚜껑, 양푼 등 소리 날만한 가재도구를 각각 들고 쇳소리를 내며 마을을 크게 돈다. 이렇게 쇳소리를 내야 도깨비들이 도망가서 마을에 좋다고 한다. 마을을 돌아 다시 제의 장소로 돌아온 부녀자들은 제물 앞에서 촛불을 켜고 동네를 위한 대동 소지를 올리며, 이어서 가정을 위해 개별 소지를 올린다. 소지 후에는 팥떡, 메밀묵, 팥죽을 동서남북으로 뿌리며 헌식을 한다. 남은 음식은 밑집으로 옮겨서 음복하며 뒤풀이를 한다. 제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남자들은 일체 나타나지 못한다. 다만 제사가 끝난 뒤에 동네 사랑방에 모여 있는 남자들에게 음식만 전해준다.

[현황]

반송 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섬진강 상류인 신암 계곡 물이 마을 앞을 지나는데 홍수를 대비하여 심은 느티나무들이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낸다. 400여 년 된 반송(盤松) 한 그루가 마을 입구에 있어서 반송리라고 부른다. 그 이전에도 마을 주위에 반송이 많았다고 한다.

반송 마을 도깨비 제사가 전승되어 왔지만 현재는 마을에 고령의 노인들만 남으면서 힘에 부쳐 도깨비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다. 반송 마을의 도깨비 제사는 1998년경부터 지내지 않고 단절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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