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404
한자 改新敎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천식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개신교는 1세기 초에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활동하던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의 종교이다. 본래는 ‘기독교’라는 하나의 교명으로 통용되었다.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교명은 1529년 쉬파이어 의회가 가톨릭의 결정에 불복한 데서 유래되었다. 특히 결정적으로 16세기 면죄부 판매 등 가톨릭의 정책에 반대한 루터, 칼뱅, 쯔빙글리 등 종교 개혁가들에 의해 가톨릭에서 분리되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는 구교[천주교]와 신교[개신교]로 불리게 되었다. 개신교는 그리스 정교회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의 하나이다.

[개신교의 진안 전래]

호남 지역 개신교 전래는 1892년에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1893년 서울에서 열린 ‘미션 공의회’에서 호남 지역을 선교구로 정한 바 그 결의에 따라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된 최의덕(崔義德)[Lewia Boyd Tate, 1862~1929]을 비롯한 7인의 선발대가 1894년에 전주에 도착하여 선교부[Jeonju Station]를 세우고 전주를 중심으로 개신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진안 지역의 개신교는 미국 남장로교 마로덕(馬路德)[Luther Oliver McCutchen, 1875~1960] 선교사에 의해 전래되었다. 마로덕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902년에 한국에 왔고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전라남도 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04년 전라북도 전주의 선교부로 옮겨왔다. 마로덕 선교사는 당시 전주 선교부를 중심으로 했을 때 동북부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완주군 일부 지역을 포함하여 진안군·장수군·무주군 등지의 선교 지역 책임을 맡아 순회 선교 활동을 하였다.

마로덕 선교사의 전라북도 동북부 지역 여정은 구불구불한 60고갯길을 힘들게 오르내려야 당도하는 험한 길이었다. 전주에서 재를 넘어 가장 가까운 지역인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진안 지역 최초의 교회인 세동 교회를 설립했다. 또 같은 지역에서 부귀 중앙 교회를 설립하는 등 부귀면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어 주천면 대불리로 이동하여 선교 기지를 정하고 대불리 교회[현 대광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부귀면 세동리주천면 대불리 중간 지점에 진상동 교회를 설립하였고, 이어서 진안 교회를 설립하였다.

당시 선교사들을 도와 교회 설립에 앞장 선 사람으로 마로덕 선교사의 조사로 처음 전도를 시작한 김필수를 들 수 있다. 김필수는 1909년 평양 신학교를 수료하고 윤식면·최중진 등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아 이들 세명과 함께 호남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김필수는 목사 안수 후 바로 진안으로 돌아왔다. 당시는 일제의 노골적 침략으로 우리 국민들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로 생명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전도하여 진안군 정천면 학골리에 학골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김필수 목사는 1910년부터 평신도 훈련을 주관하여 진안 지역 교회 지도자들을 길러내고 제직회를 조직하였는데, 그가 길러낸 이 조직이 진안 지역을 복음화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선교사로는 마로덕 외에 보이열과 강운림 등이 있었다.

[현황]

진안 지역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소속의 교회만 있으며 2013년 현재 전체 교회 수는 74개이다. 이를 교파별로 보면 합동측 교회가 부귀 중앙 교회[부귀면 거석리], 용담 전원 교회[용담면 송풍리] 등 43개로 가장 많다. 통합측은 대광 교회[주천면 대불리], 세동 교회[부귀면 세동리] 등 17개 교회가 있다. 기장측은 대평 교회[진안읍 연장리], 좌포 교회[성수면 좌포리] 등 7개 교회가 있다. 또한 성결 교단으로 진안 성결 교회[진안읍 군상리], 감리 교단으로 진안 감리 교회[진안읍 중앙로] 각각 1개씩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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