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100
한자 金利信
이칭/별칭 석락(錫洛)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연표보기 - 김이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김이신 일본 경찰에 체포됨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경력 대한 독립단 조직

[정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락(錫洛). 판서 두계(杜溪) 김충유(金冲裕)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김이신(金利信)[1893~?]은 경술국치 이후 원통함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국내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일 또는 삼칠일[21일] 기도를 하는 등 오랜 동안 전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7~8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고, 7척의 넓은 베에 크게 쓴 기를 만들었으며, 나팔과 큰 칼 및 쇠창 등의 무기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또한 천문지(天文誌)와 지도(地圖) 또는 음양진(陰陽陣)과 문무도(文武鞱) 등의 병서(兵書)를 연구하는 등 독립운동의 뜻을 굳게 세웠다. 불행히도 1938년(戊寅) 봄에 이것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3년간 갖은 고초를 당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되었으나 남북으로 분열되니, 백마산(白馬山)에 한 칸의 흙집을 짓고 민족 통일과 평화를 밤낮으로 기원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성렬(李成烈)이 찬한 행장이 있다. 원제는 「고사인 김공이신 실행(故士人金公利信實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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