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93
한자 吳玭
이칭/별칭 영보(榮甫),성산(聖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7년연표보기 - 오빈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0년 - 오빈 증광 문과의 병과 급제, 홍문관 정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593년연표보기 - 오빈 사망
추모 시기/일시 1593년 8월 15일 - 오빈 장사랑 증직, 병조 참의 추증
출생지 오빈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함양(咸陽)
대표 경력 의병장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영보(榮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 판서를 지낸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으로 오사운(吳思雲)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오빈(吳玭)[1547~1593]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에 증광 문과의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홍문관 정자로 등용되어 국가 문서를 맡아서 처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호종(扈從)보다 직접 적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휘하로 들어갔다. 이때 오빈은 사촌동생 오형(吳珩)에게 “국운이 이제 풍전등화이니 어찌 이를 대장부가 보고만 있겠느냐! 나는 왜적을 막기 위해 기꺼이 의병에 참여할 것이니 너는 고향에서 부모 모시고 부모의 상을 당하면 예도(禮道)에 맞게 시묘할 것이며 부모님 모시기를 하늘같이 하라.”고 부탁하였다 한다. 고경명과 더불어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 진을 쳤으나 왜병에게 패전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그후 1593년 다시 의병장 고종후(高從厚)와 함께 의병을 모아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6월 22일 시작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10만의 왜군을 맞아 싸웠으나 7일간을 버티다 성이 함락되었다. 이에 오빈고종후, 김천일 등 22명과 함께 1593년 6월 29일 촉석루에서 북향(北向) 사배(四拜)한 후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1593년 8월 15일 합동 위령제를 지내는 한편 장사랑으로 증직하였고, 이후 병조 참의에 추증하고, 정문(旌門)을 세워 주었다.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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