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헌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28
한자 鄭憲海
이칭/별칭 사유(士裕),운송(雲松),헌규(憲奎)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망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19년연표보기 - 정헌해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정헌해 사망
묘소|단소 정헌해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망화리 지도보기
성격 무관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오위장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유(士裕), 호는 운송(雲松). 처음 이름은 헌규(憲奎)였으며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 朴氏)였다.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던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의 11세손이다.

[활동 사항]

정헌해(鄭憲海)[1819~1887]는 품성이 곧았으며 일을 처리하는 데는 언제나 공정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모시는 데 있어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고생하시던 어느 추운 겨울, 아버님께서 고기를 드시고 싶다고 말하자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냇가에 나가 얼음을 깨어 고기를 잡아 공양하기도 했다.

최종 관직은 가선대부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 도총부 도총관 겸 오위장(嘉善大夫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都總府都摠管兼五衛將)이었다.

[묘소]

묘는 진안군 정천면 망화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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