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15
한자 雲山里外內後平山申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830년경 - 운산리 외내후 평산 신씨 집성촌 형성
집성촌 운산리 외내후 평산 신씨 집성촌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외내후 마을 지도보기
성격 동족 마을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 있는 평산 신씨의 동족 마을.

[개설]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외내후 마을내후사동(內後寺洞)과 외후사동으로 나뉘는데, 이중 내후사동 마을에는 평산 신씨가, 외후사동에는 밀양 박씨, 조양 임씨, 장수 황씨 등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명칭 유래]

운산리진안읍에 소속된 법정리로 본래 진안군 상도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후사동, 언건리, 송대리, 유산리, 구운리, 신흥리를 병합하여 구은과 유산의 이름을 딴 운사리로 상전면에 편입되었다가, 1987년 1월 1일 대통령령에 의거하여 진안읍에 편입되었다. 용담댐의 건설로 언건리 일부가 수몰되었다.

외내후 마을은 외후사와 내후사가 합해져서 생긴 명칭이다. 후사동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시대 지은 절이 뒷산에 있었기 때문이다.

[형성 및 변천]

평산 신씨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었다. 평산 신씨로 진안에 들어온 사람으로는 목사 경(經)의 9세손인 신세규(申世奎)가 남원에서 진안읍 사인동으로 들어왔으며, 진안 현감을 지낸 신영균(申永均)이 옥구에서 상전면 갈현리로, 신경룡(申慶龍)은 옥구에서 이곳 상전면 후사동으로 들어왔다.

신경룡은 좌의정 제정공 신효창(申孝昌)의 후손으로 1830년경에 이곳으로 들어왔다. 묘소는 상전면 원송대리 서쪽에 있으며, 부인 안동 권씨와 합장하였다.

평산 신씨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 15만 4612가구에 49만 6874명, 전라북도 6,400가구에 1만 9859명, 진안군에는 84가구에 265명이 거주하고 있다.

[자연 환경]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후사동부귀산[높이 806.4m]에서 상전면 월포리 성주봉[높이 446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을 서쪽에 있으며, 이들 골짜기에서 발원한 후사동천이 흘러 용담댐으로 흘러든다.

[현황]

2010년 기준으로 내후사 마을에는 14가구가, 외후사 마을에는 1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외내후 마을은 대체로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각성바지 마을이나, 한때 평산 신씨의 집성촌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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