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636
한자 中吉里沙器店陶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387-2|산 114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윤성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전북 지방 도요지의 연구」에 보고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국립 전주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387-2 지도보기
소재지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산 114 일원지도보기
성격 가마터|청자·분청자 가마 유적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가마터.

[개설]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는 조선 시대 분청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 2개소가 존재한다. 이를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A,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B라고 한다.

[변천]

성수면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요지에 대한 변천 과정은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이곳은 오래전까지 사기 장인들의 집성촌이었다고 전해지고 진다.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가마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에서 진안군 성수면 방향의 약 6.8㎞ 지점에 좌포 터널을 지나 1㎞ 정도 가다 보면 양화 교차로가 나온다. 중길리 방향으로 약 4㎞ 들어가면 성수면 중길리 사기점 마을이 나온다. 중길시 사기점 도요지 A는 마을로 들어가는 마치교에서 약 130m 떨어진 서쪽 편 일대 산사면에 위치하며,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B는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A에서 서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산사면 하단부 일대에서 확인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성수면 중길리 도요지는 『문화재지』, 『전라북도지』, 『진안 군사』에 소개되어 알려졌으나, 본격적인 유적의 현황은 1992년, 1997년, 2007년에 파악되었다. 1992년 조계현의 논문인 「전북 지방 도요지의 연구」에서 사기점 도요지 A는 인화, 귀얄, 덤벙 기법의 분청자가 확인되었으며, 시기를 16세기 초로 편년하였다. 사기점 도요지 B는 인화, 귀얄 기법 등이 발견되나 백자화 되어 가고 있다고 하였으며, 사기점 A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고 있다.

1997년은 국립 전주 박물관에 의해 조사된 바 있는데 사기점 도요지 A에서는 청자, 회청 사기, 분청 등이 수습되었으며, 사기점 도요지 B에서는 소량의 분청만이 채집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따라서 유물의 편년은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로 상정하고 있다. 2007년은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사되었는데, 지형의 현상 변경이 많이 진행되었다.

[현황]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A는 현재는 과수원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요지의 상태는 1992년과 1997년에 비해 지형이 현상 변경이 심하게 이루어져, 유적의 훼손이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지표상에서 보이는 유물의 양상도 적고 훼손이 심하다.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 B는 마을 서쪽의 산사면 하단부 끝자락으로 사기점 도요지 A와는 15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잡목이 우거지고 사람이 드나들기에는 힘든 곳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가파른 경사면에 퇴적의 양상이 양호하게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20m 정도 올라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곳에 많은 양의 분청자 편이 산재해 있다.

중길리 사기점 도요지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14세기 말 상감 선·연당초문, 인화여의두·국화·육원문 등의 퇴락한 청자에서 인화문, 덤벙문, 귀얄문 계통의 분청자 등이 발견되며 기종은 접시, 발, 병, 장군 등 다양하다.

[의의와 평가]

성수면 중길리 도요지는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전반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물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퇴락한 청자에서부터 15세기와 16세기 전반까지의 분청자들이 채집된다. 특히 분청자의 다양한 기종과 문양의 시문 기법을 볼 때 질적인 면에서도 매우 우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수면 중길리 도요지는 진안 지역 내의 도자 생산 유적이 시기적으로 12~14세기 전반기까지 공백기로 남아 있는 것을 보완해주는 유적이다. 즉 청자에서 분청자, 조선 시대 백자로 이어주는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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