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현, 용담에 갇히다-고향 잃은 용담호 주변 사람들의 삶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015
한자 勿居縣-龍潭-故鄕-龍潭湖周邊-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호

[용담댐 건설과 진안군의 변화]

용담댐은 1992년 건설 계획이 발표되고, 약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1년 준공되었다. 진안군 6개 읍면[진안읍, 용담면, 안천면, 상전면, 정천면, 주천면]의 70개 마을이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에 포함되었다. 1992년 진안군 전체 인구 4만 6115명 중 댐 유역 6개 읍면의 인구는 2만 6368명이고, 이중 직접 수몰되는 지역의 인구는 1만 2567명으로 진안군 전체 인구의 약 27.3%에 달하였다. 용담댐 면적은 38.182㎢로 진안군 전체 면적의 약 4.8%에 이른다.

용담댐이 완공된 2001년 진안군의 전체 인구는 3만 2750명으로 1992년에 비해 1만 3365명이 감소하여 약 29%의 인구 감소를 기록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전라북도 군 지역 인구의 감소율이 평균 17.8%인데 비하면 용담댐 건설이 진안군의 인구 감소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용담댐 수몰 지구가 포함된 댐 주변 5개 면[진안읍 제외]의 인구는 1992년 1만 6418명에서 2001년 6,698명으로 감소하여 59.2%의 감소율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인구 구조의 측면에서 보아도 용담댐 건설로 인한 진안군의 인구 변동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용담댐이 완공된 2001년 현재 댐 주변 5개 면의 인구 고령화율은 21.6%에 달하여 전국 평균과 전라북도 군 지역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을 보여준다.

같은 기간 동안 진안군의 전체 농가 인구수는 약 43.7%가 감소하고, 경지 면적은 17.7%가 줄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진안군의 쌀 재배 면적은 23.7% 감소하였는데, 용담댐 주변 5개 면의 식량 작물 재배 면적은 거의 60%가량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경지 면적의 감소는 수몰 면적과 거의 비례하고 있다. 즉 수몰 지구가 많은 상전면, 용담면, 안천면 지역의 식량 작물 재배 면적의 감소율은 거의 70%에 달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인삼은 진안군의 최대 농작물 중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그러나 용담댐 건설로 인해 진안군 전체의 인삼 재배 농가는 약 25%가량 감소하였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용담댐 주변 5개 면의 인삼 재배 농가는 약 55%가 감소하였으며, 재배 면적도 약 40%가량 줄어들었다.

이처럼 1992년부터 2001년까지의 10년 동안 진안군은 한국 사회 전체 농촌 지역의 평균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농업 생산의 감소를 경험하였다. 특히 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과 보상, 이주 등이 진행되었던 댐 주변 5개 면 지역의 인구학적, 산업적 변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에 달하였다. 즉 용담댐 주변 5개 면은 인구의 단순 감소를 넘어 인구 기반의 해체, 남은 인구의 급격한 초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삶의 터전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국 농촌 지역이 10% 미만의 고령화율을 기록하고 있던 2001년 진안군의 용담댐 주변 5개 면은 이미 21% 이상의 고령화율로 초고령화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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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댐 건설로 인한 수몰은 지역의 가장 비옥한 농경지와 거주지를 대상으로 한다. 인근의 산세를 경계로 하여 낮은 평야 지역에 저수지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용담댐도 다르지 않아서 수몰 대상 지역의 주민들은 거주지와 가장 비옥한 경작지를 잃게 되었다. 이 결과 댐 건설 이후 용담댐 주변 5개 면은 식량 작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감소하게 되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농민들에게 집과 논, 밭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터전을 모두 잃는 것을 의미하였다. 수몰민들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생계 터전의 상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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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댐 수몰민의 삶]

용담댐은 전주권 및 서해안 지역 수자원 확보라는 명분으로 지난 1992년 공사 착공한 이래 사업 기간만 만 11년이 소요되었다. 댐 공사에 1조 5000억 원이 넘는 공사비가 투입되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현재의 댐 면모가 갖춰지기까지는 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과 보상 투쟁이 고스란히 상처로 남겨져 있다[진안군·전북 대학교 박물관, 1993]. 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타지로 떠난 이주민들과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주변에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향후 생계 및 생활문제는 용담댐이 완공된 이후에도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동안의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개발을 위한 대규모 토목 공사들이 수없이 많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는 항상 엄청난 환경 변화가 발생하고 때로는 주변 환경이 심하게 오염되었으며, 이는 용담댐의 경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 영향으로 현지 주민들은 생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거나 아예 삶의 터전을 상실하게 된 경우가 허다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국가적 필요와 공익성이라는 명분의 강압적 태도나 법률적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물론 주민들이 강력하고 조직적으로 저항할 경우 어느 정도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 외의 금전으로 환산될 수 없는 상징적, 문화적 변화나 정신적 피해,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인정하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 자연환경과 지역 주민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는 대규모 사업들이 그 영향과 피해에 대한 신중한 검토나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되고 시행되어 왔으며, 그 결과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삶은 계속 파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용담댐 주변 지역민들이나 수몰 이주민들 모두 이제는 댐을 현실로 인식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외부에 의해서 결정되고 시행된 사업 때문에 삶의 전반에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된 것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다독이고 있는 셈이다.

2002~2003년에 실시된 한 조사 자료[한국 수자원 공사, 『용담댐 수질 보전 연구』, 2003]에 의하면, 조사 당시 용담댐 주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주민의 평균 거주 기간은 무려 52년이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시간 이상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농촌 사회가 긴밀한 유대와 정서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성립하는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50년 이상을 한 동네에서 같이 살아온 주민들에게 지역 사회는 지리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 정신적인 장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담댐 건설 계획이 발표되던 1992년 당시 주민들이 70% 이상이 댐 건설을 반대하였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실제로 지난 1993년 당시 진안 지역의 사회 인류학적 조사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용담댐 건설에 대한 주민 의식 부분에서 용담댐 건설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1.3%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으며, 조건부 반대하겠다는 응답이 24.5%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반면 당시 조시에서 용담댐 건설을 찬성하였던 응답자는 15.0%이고 결정하지 못하였다는 응답이 9.2%를 차지하였다[진안군·전북 대학교 박물관, 『진안 용담댐 건설 수몰 예정지 문화재 정밀 지표 조사 보고서』, 1993]. 주민들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응답자의 32.9%], ‘생업의 피해’[20.9%], 그리고 ‘주민들의 삶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19.7%]의 순이었다. 이후 수몰 예정 지역 주민들은 마을 조직[부녀회, 청년회 등]뿐만 아니라 댐 건설과 관련된 주민 조직[용담댐 투쟁 위원회, 용담댐 대책 위원회, 댐 반대 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참여하여 지난한 투쟁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2002년 현재 진안군 주민들은 용담댐 상수원 보호 구역 지정에 맞서 다시 싸움을 조직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현재 댐은 완공되었고, 약 1만 3000명에 이르는 이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일부는 서울, 대전, 전주, 금산 등 외지로 나갔고, 상당수는 진안군 내에 새로운 생활 터전을 마련하였다. 중요한 문제는 댐 건설과 수몰, 이주 등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생활 기반과 삶의 터전을 잃은 지역 주민들이 새로운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앞에 인용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댐 건설 이후 생활에 대해서 응답자의 약 50%가 더 어려워졌다고 응답하였고,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응답은 전체의 7.1%에 불과하였다. 2002년 7월에 진안군에서 실시한 조사[진안군, 「상수원 보호 구역 지정 예상 피해 대책」, 2002]에 따르면 댐 건설 이후 용담댐 주변 지역 주민 1/3이 주요 소득원이 바뀌었다고 응답하였다. 댐 건설 이전에 농업에 종사했던 사람들 중 약 17.8%가 무직자가 되었고, 이전에 생산직 종사자 중 29.4%가 일자리를 잃었다.

고향을 떠나기 싫어 진안읍[군상리 주공 임대 아파트]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하다. 이주 보상금도, 일자리도, 그리고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없다니까요, 아무 것도 없어요. 여기 올 적에 송장 아파트 온다고 했어요. 늙은이들이 돈 벌어 먹을 수가 있어? 아무것도 못해먹는데... 송장 아파트라고 해서 어떤 사람들은 저기로 갔다고 하대요. 여기 송장 아파트라고 들어온다고 했어요. 늙은이들이 오니 벌어먹을 수가 없지, 뭐. 아무것도 없으니까 송장 아파트라고... 여기 오면 굶어 죽으니 송장 아파트라 했는가 봐, 늙어 죽응게 …….”[진안읍 군상리, 여]

“거기서 뭐했냐고 그러는데, 거기서는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도 있구요, 못 짓는 사람은 농사짓는 집 가서 품팔이를 해서 먹고, 이렇게 살았거든요. 여기에는 그게 없잖아요. 없으니까 있는 돈만 홀딱홀딱 곶감 빼먹듯 다 써버리고 …… 없죠. 어디 가서 10원 한 푼 벌어 보질 못했어요. 어디 가서 봉투라도 만들게 해 달라고 했어요. 그냥 말로 그랬죠 …… 여긴 노인들이 촌에서 와서, 어디다 얘기하면 도와주는지 이런 것도 몰라요 …… 모르고 …… 이렇게 찾아오신 분에 한해서 얘기를 하는 거요.”[진안읍, 72세, 여]

그러나 적어도 이들에게는 가까운 곳에 고향이 있다. 비록 물에 잠겼을지라도 버스를 타고 30분 남짓이면 고향 마을에 같이 살던 사람들이 있다. 비록 예전처럼 같이 일하고 새참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수십 년을 같이 살고 같이 부대껴 온 고향 사람들이다. 하지만 서울, 대전, 전주, 금산 등지로 떠난 이주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실향민의 전형이다.

“아, 뭐 빌딩 …… 이런데 하러 댕기는데, 그런 거라도 해서 좀 어떻게 용돈 해 써야겠다고 하고 댕기는데 …… 그러니깐 60살 넘어서 오는 사람들은 …… 참 솔직한 얘기로 가져올 거는 까먹으면 까먹었…… 전부 보태는 사람이 없어요. 어디 또 이향 온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니까 다 어디가 살아도, 노동력이 있어서 …… 보탰는가는 몰라도 우리 같은 경우는 전부 솔직한 얘기로...막말로... 송장 죽으러 온거 밖에 없어요. …… 하나 보태는 게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예, 돌아가시는 분도 연세가 …… 우리 마을도 이주하고 돌아가신 분이 다섯 분인가, 여섯 분인가 돼요. 다들 나이가 많으신 분이고 …… 또 나이가 한 70 미만에 돌아가신 분들은 …… 그 심정이 좀 …… 그 있던 분이시고 …… 현재 이주해서, 가장 고령자로 사시는 분이 저희 어머니예요. 우리 마을에서 제일 나이 많으신 분이 우리 어머니고, 한 분이 저기 …… 그 뭔 동이냐, 서재철 씨라고 …… 남자분이 팔십 넷인가, 다섯인가 되시는 분이 있고 …… 그래요. 그리고 다섯 분인가, 여섯 분인가 돌아가셨어요.”[대전, 68세, 남]

“우리 같은 경우는 솔직이 몸만 성하면 먹고 사는데 …… 도시로 나간 사람들은 막노동 나가 가지고 하루 먹고 사는데, 그것도 참 몸이나 건강하고 이렇게 하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가 가지고는 …… 저도 솔직한 얘기로 금년에도 노동을 좀 했었거든요. 고속도로에서, 익산서 일을 좀 하고 그랬는데 …… 옛날에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장애가 생겨 가지고... 서 있지를 못해. 그러다가 좀 나갔더만 …… 이 다리가 또 아프다고. 이 다리가 또 아파. 그래 가지고 에라 안 되겠다 싶어서 일도 안 나가고 그러고 있는디 ……”[삼례, 남, 63세]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온 이주민들은 이주 초기에는 이주 지역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하고 모임을 가지기도 하면서 지냈다. 사회 과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도시 속의 농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농촌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도시에 와서도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농촌에서 함께 살면서 지내던 풍습을 한동안 그대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다.

전주, 대전 등으로 이주한 용담댐 수몰 지역 이주민들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안부를 전하며 교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임을 통해서 서로의 고향 소식도 듣고 도시에서의 삶에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도시 생활에서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도움을 서로 주고받는 기회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도시 속의 농촌’은 세대를 넘어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주 1세대가 건강 악화, 사망, 이주 등으로 참가할 수 없게 되면 이 교류는 점차 줄어들다가 종래는 소멸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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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의 정책적 대응]

진안군에서는 댐 건설로 인해 나타나는 급격한 인구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용담댐 수몰민을 대상으로 관내 이주를 장려하는 지원 정책을 실시하였다. 먼저 관내 이주를 희망하는 세대를 대상으로 하여 진안읍 군상리에 주공 임대 아파트를 조성하여 1999년부터 수몰 이주민의 입주를 시행하였다. 또한 용담댐 주변 6개면에 소규모 이주 단지를 조성하였다. 소규모 이주 단지는 1996년부터 2001년 현재까지 단지 당 5~19세대의 규모로 조성되어, 50개 단지에 총 407세대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주 단지의 조성은 시기적으로 좀 늦은 감이 있다. 즉 용담면의 이주 단지는 102세대를 조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현재 약 50%의 입주율에 그치고 있다. 수몰로 인하여 이주한 세대를 심층 면접한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용담면 이주 단지의 입주율이 낮은 것은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댐 건설 초기, 즉 이주 단지가 조성되기 이전에 타 지역으로 이주를 마쳤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다시 말하면 진안군의 이주 단지 조성이 조금 일찍 시작되었으면 보다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진안군에서는 미진한 이주 단지의 입주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이주민 지원사업을 시행하였다. 단지 내 택지 및 기반 시설 조성을 지원하고, 자금 부족을 겪는 입주 신청자들이 주택을 신축할 경우, 주택 신축 자금도 지원하였다.

그러나 진안군의 이러한 인구 정책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그 계획과 시행이 너무 늦어졌다는 점이다. 용담, 상전 등 용담댐 건설 초기에 보상을 받은 수몰 이주민들이 이주 지역을 놓고 고민을 하던 시절에는 이주 단지 조성 계획조차 수립되어 있지 않았다. 대전·전주권 등으로 이주한 초기 수몰 이주민들은 그 점에 대해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주한 지역에서 생활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기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한다.

“저 같은 경우는 거기 가서 살 대책이 없기 때문에 못 가요. 고향에 가야 땅도 없죠. 뭐 아예 대책이 없죠. 저는 죽어서나 선영 밑으로 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죽어서나 가야지 ……”[대전, 62세, 남]

또 이주 단지 입주 후의 생계 대책이 전혀 없다는 점도 주요한 문제점이었다. 이미 토지와 생활 기반을 잃은 이주민들이 이주 단지 부근에서 농업에 종사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이주 단지는 이미 은퇴했거나 노동 능력이 없는 노인층만이 입주 대상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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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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