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이나 기술 또는 그 구축물. 건축은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담고 있는 총체적인 주거 문화의 산물이다. 진안 지역의 건축 문화는 진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주거 문화의 총 본산이다. 진안은 전라북도 동부 산악 지방인 노령 산맥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고원 지...
-
고려 후기 진안 용담 출신 무신. 고천백(高天伯)[?~?]은 고려 때 원종과 충렬왕 때에 사신으로 원나라를 내왕하면서 외교를 담당하였다. 일정한 무관직을 맡은 바 없고 비록 계급은 종3품 대장군에 머물렀으나, 원의 고려 간섭기 초기에 사신으로 원을 내왕하면서 대원 외교 관계 정립에 공을 세웠다. 특히, 1274년(원종 15) 장군으로 판각문사(判閣門事) 이신손(李信孫)과...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은거했던 최양 자손에게 세종이 내린 책. 『금감록』은 태조가 전주 최씨 최양을 위해 지은 책으로 1424년(세종 6)에 최양 가문에 내렸다. 최양은 포은 정몽주의 조카로서 태조 이성계와는 어릴 적 친구였으며, 1380년 황산대첩에 종사관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정몽주가 1392년 4월에 선죽교에서 죽자 최양은 남쪽 지방 진안에 내려와...
-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첫 재현 공연한 조선 태조와 관련된 당악 정제(唐樂呈才) 양식의 춤. 금척무는 본래 몽금척(夢金尺)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건국 이념에 부합되게 창제한 당악 정제(唐樂呈才) 양식의 춤이다. 1402년(태종 2) 궁중에서 사용할 연회 예식을 정할 때 『고려사』에 전하는 「오양선(五羊仙)」·「무고(舞鼓)」 등의 정재와 함께 「몽금척」이 들어...
-
김시흥(金時興)을 시조로 하고, 김분수(金芬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김녕 김씨(金寧金氏)의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으로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여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졌으며, 명종 대에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평...
-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김경원(金鏡元)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김해 김씨의 시조는 가락국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김수로왕은 42년(신라 유리왕 19) 금관 가야 9부족의 추장인 9간(九干)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으며,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비로 삼았다. 김해 김씨는 시조 수...
-
조선 후기에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 22첩 중 전라북도 진안군 지역 고지도. 『대동여지도』 「진안·용담현」 지도는 축척을 명시한 약 1:160,000 정도의 고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 간격 22층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층을 1첩으로 만들고, 22첩의 지도를 상하로 연결하여 전국 지도가 되...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은수사에 있는 제사 유적. 마이산은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까지 소사(小祀)의 대상으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서다산(西多山)이 백해군(伯海郡) 난지가현(難知可縣)에 있다고 했으며, 『고려사』에서도 진안현의 마령에 “마이산이 있는데 신라에서는 서다산이라 불렀으며 소사에 실었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마이산의 옛...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 전해오는 만육 최양에 관한 인물 이야기.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에서 전해오는 「만육 선생과 돈적소」는 조정에 나와서 벼슬하라는 이성계의 요청을 거부하고 팔공산 돈적소에서 은둔하며 고려 유신으로서의 충절을 지킨 최양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성계를 부정적으로 그려낸 이성계 설화에 포함된다. 「만육 선생과...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에 있는 최양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비. 1871년(고종 8)에 최양(崔瀁)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비이다. 최양(崔瀁)[1351~1424]은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며 은둔하였던 고려 말의 충신으로 유명한 이른바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정몽주의 조카이기도 하였던 최양은 1380년(고려 우왕 6) 문과...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매사냥의 전통 기법을 전수 받은 전통 ‘매꾼’. 매사냥에 나서려면 최소 인원이 5~6명,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매사냥할 때 매를 받는 사람을 진안 지역에서는 ‘봉받이’라고 부른다. ‘봉받이’는 매를 훈련시키는 사람이기도 하고 주인을 말한다. 흔히 매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다. 매사냥은 삼국 시대부터...
-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진안 문학의 대상 범위는 진안에서 태어나 진안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 진안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진안을 배경으로 한 문학, 진안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진안 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진안 문학은 역사적으로 고려 이규보(李奎報)...
-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행해지는 모든 문화 예술 활동. 예로부터 산세가 험준하고 길이 구불구불한 진안은 낙향한 선비들이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음풍영월하기에 최고의 지역으로 손꼽는다. 진안은 타 지역에 비해 문학, 미술, 무용, 농악 등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주었다. 특히 진안은 화려하며 수려하고 맛난 8경(景) 8품(品) 8미(味)로 유명하다. 8경은 마이산, 용담...
-
삼국 시대부터 767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동향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물거현(勿居縣)은 기록의 미비로 지명의 유래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오늘날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용담면·동향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에 해당하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물거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
-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가는 하천. 섬진강(蟾津江)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에 있는 데미샘[금남 호남 정맥의 팔공산~성수산 중간 지점]에서 발원하는 유로 연장 222.05㎞, 유역 면적 4,914.32㎢의 강이다. 진안군에서 발원하여 진안고원을 따라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전라북도 남원군과 전라남도 구...
-
전라북도 진안군 옥천사에 배향된 고려 말 조선 초기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초명(初名)은 한생(漢生), 호는 이헌(怡軒). 시호는 문정(文靖).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시조(始祖) 성인보(成仁輔)의 현손(玄孫)으로 할아버지는 전객사 부령(典客司 副令)을 지낸 성공필(成公弼)이고 아버지는 판도 총랑(版圖摠郞)을 역임한 성군미(成君美)이다. 어머니는 삼사 좌윤(三司左尹...
-
송경(宋卿)을 시조로 하고, 송유경(宋裕景)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지역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시조인 송경(宋卿)의 시호는 숙의이며, 고려 공민왕 때 찬성사가 되고 홍건적의 난 때 모거경을 격파한 공으로 직밀직사사에 올랐으며 연안 부원군(延安府院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송경을 시조로 하고 연안을 본관으로 하였다. 송경의 아들 송훈(宋勛)은...
-
고려 말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왜구(倭寇)는 삼국 시대부터 출현하였지만, 고려 시대에는 고종(高宗) 때부터 시작하여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빈번하게 침략하였다.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재위 1349~1351]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약 40여 년 간이며, 그 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 간[1374~1388]에 가장 극심...
-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전라도 용담현의 통치를 담당하였던 지방관. 용담 현령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용담현의 통치를 담당하였던 수령을 가리킨다. 용담현의 수령은 원래 현령이었으나 1646년(인조 24)에 현감으로 격하되었다. 1656년(효종 7)에 다시 현령으로 회복되었다가, 용담현이 진안군으로 편입되면서 용담현의 현령직은 사라지게 된다. 한편 현령의 품계는 종5품...
-
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담면, 정천면, 안천면, 동향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용담군은 1895년(고종 32) 옛 용담현에 설치한 행정군(行政郡)으로 1914년 군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에 합쳐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용담(龍潭)은 현의 동남쪽에 두 물이 서로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었기 때문에 그...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있는 용담 향교의 대성전. 용담 향교 대성전은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용담 현령 최자비(崔自俾)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용담 향교 대성전은 진안군 동향면...
-
1313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용담현(龍潭縣)의 유래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현의 동남쪽에 두 물이 모이는 곳에 용담(龍潭)이 있어 이름으로 취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용담’의 옛 지명인 ‘물거(勿居)’나 ‘청거(淸渠)’ 등은 모두 물갓·물가의 음차(訓借)이고, ‘용담’의 ‘용’도 훈이 ‘...
-
삼국 시대와 고려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월량현(月浪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으로 지명을 정하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월량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에서 진안현의 연혁을 상고하면서 이를 백...
-
근대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여일(汝日), 호는 산남(山南). 고려 정당문학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규열(李奎烈)이고 할아버지는 이우만(李佑萬)이고 아버지는 이공범(李貢範)이다. 장인은 연안 이씨 이순구(李淳九)이다. 아들은 이길수(李吉洙)이다. 이도계(李道繼)[1879~1951]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진안지...
-
개항기 진안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양래(陽來), 호는 후산(厚山). 고려 정당문학(政堂文學) 봉성산군(封星山君) 문열공(文烈公)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의 후예로 아버지는 월암(月庵) 이동범(李東範)이다. 아들로는 이면수(李冕洙)·이곤수(李袞洙)·이필수(李鞸洙) 등이 있다. 이도복(李道復)[1862~1938]은 단성현(丹城縣)[현 경상남도...
-
황경(黃瓊)을 시조로 하고, 황징(黃澄)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는 중국인인 황락(黃洛)이다. 황락은 공무로 바다를 건너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다가 신라 경순왕 때 지금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면에 도달하여서 신라에 귀화하였다. 황락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가 평해 황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가 장수 황씨의 시...
-
조선 전기 진안으로 낙향한 문신.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여 진안으로 낙향하였다. 본관은 천안(天安). 호는 낭헌(浪軒). 형조 판서를 지낸 문평공(文平公) 도은(都隱) 전문식(全文軾)의 증손으로 판중추부사 전사미(全思美)의 아들이다. 전극례(全克禮)[?~?]는 『진안지』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재주가 비상했을 뿐 아니라 도량이 넓고 문장이 장...
-
조선 전기 천안 전씨 진안 입향조.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문영(文英), 호는 도은(都隱). 시호는 문평(文平). 증조할아버지는 판공부사(判工部事)를 지낸 영평군(永平君) 전단(全旦)이고 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한 전려(全呂)이고 아버지는 좌복야(左僕射) 전희(全熙)이다. 어머니는 시중을 지낸 윤은형(尹殷衡)의 딸이다. 모두 고려 때 벼슬한 사람이다. 전...
-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거(李琚)를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은 덕망이 높고 문장이 탁월하여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다. 전주 이씨 족보인 『선원선계(璿源先系)』에 따르면 전주의 토착 세력으로 명문 태생이었다고 한다. 18세손 이안사(李安社)는 대대로 전주에서 살다가, 삼척...
-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고, 최종(崔琮)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전주 최씨는 계보를 달리하는 4개 종파로 구분한다. 『전주 최씨 연원보(全州崔氏淵源譜)』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제10대 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숙종 때 병부 상서와 신호위 상장군(神號衛上將軍)을 지내고 완산부 개국백(完山府開國伯)에 봉해진 최순작(...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 골짜기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섬진강 상류 하천. 제룡강은 섬진강이 진안군 백운면과 마령면을 지나는 구간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마령면 강정리에 이르러 세동천과 합류할 때까지 산 사이를 흐르며 백운들과 마령들을 형성한다. 백운면 반송리 반송 마을 앞에 개안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에 걸려 있는 편액문...
-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고수명(高秀命)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제주 고씨는 양씨(梁氏), 부씨(夫氏)와 함께 탐라[제주]의 지배 씨족으로, 이들 세 성의 탄생 설화에 대하여, 삼성혈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시조 고을나의 46세손인 고말로(高末老)는 제주 고씨의 중시조로, 탐라국 성주이자 국주(國主)이다. 그...
-
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진안 지역은 조선 건국 후 진안현(鎭安縣)과 용담현(龍潭縣)의 2현으로 재편되었다. 진안 지역은 웅치 전투, 기축옥사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조선 시대에 용담현은 본래 청거현(淸渠縣)으로 금산의 속현이었는데 1313년(충선왕 5) 용담현으로 개칭되면서 독립하였다. 진안...
-
고려 후기 남송에서 귀화하여 진안에 은거한 신안 주씨 시조.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주자(朱子)이고 할아버지는 안양후(安陽候) 주야(朱埜)이고 아버지는 광국후(光國候) 충무공(忠武公) 주거(朱鋸)이다. 아들은 추밀원밀직사(樞密院密直司)를 역임한 주여경(朱餘慶)이고 손자는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를 역임한 주열(朱悅)이다. 주잠(朱潛)[119...
-
안원형(安元衡)을 시조로 하고, 안수홍(安守洪)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죽산 안씨는 신죽산 안씨와 구죽산 안씨로 나뉜다. 구죽산 안씨의 시조는 고려의 상서좌복야 안영의(安令儀)이며, 신죽산 안씨는 순흥 안씨 안자미의 7세손 안원형(安元衡)이 시조이다. 안원형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을...
-
76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진안현(鎭安縣)의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보면, 현재의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난진아현(難珍阿縣) 또는 월량현(月良縣)이었고, 이 지역을 신라가 장악한 후 767년(경덕왕 16)에 진안현(鎭安縣)으로 개정하면서 벽계군(壁谿...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천황사에 있는 조선 후기 전각. 천황사는 875년(신라 헌강왕 1) 무염 선사(無染禪師)가 세우고 1064년(고려 문종 18)에 대각 국사 의천(義天)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숙종 연간에 학조 대사(學照大師)·애운 대사(愛雲大師)·지견 대사(智堅大師)·혜명 대사(慧明大師) 등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천황사 대웅전은...
-
767년부터 1313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동향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청거현(淸渠縣)은 기록의 미비로 인하여 정확한 지명의 유래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용담면·동향면·안천면·정천면·주천면에 해당하는 지역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명이 청거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
-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에 이어 나타나며,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철제 도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를 말한다. 진안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주거지와 고인돌 등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진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은 크게 생활 유적과 분묘 유적으로...
-
호남의 지붕인 진안고원은 도요지의 보고이자 도자 문화의 중심지이다. 약 1억 년 전 중생대 마지막 지질 시대인 백악기 때 큰 호수였던 진안고원이 고령토 산지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중앙부에 자리한 지정학적인 이점으로 줄곧 교통의 중심지라는 사실도 빼 놓을 수 없다. 진안고원에서 도자 문화의 첫 장을 열었던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외궁리의...
-
조선 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우은(愚隱). 고려 말 수절신 충익공(忠翼公)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5세손이다. 만육 최양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생질[정몽주가 만육의 외삼촌]로 고려가 망하자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팔공산에 은거하였으며, 후에 완주군 대승 마을로 이거하였다. 최인수(崔麟壽)[?~?]는 진안군 마이산에서 태어났다. 학...
-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태여(台汝). 충익공(忠翼公)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최규(崔逵)이고 아버지는 최세효(崔世孝)이고 장인은 탐진(耽津) 최도영(崔道永)이다. 아들로 최장기(崔長淇), 최호기(崔浩淇)가 있다. 만육 최양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생질[정몽주가 만육의 외삼촌]로 고려가 망하자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 팔...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 있는 공주 이씨 집안의 사당.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상좌 마을에 있는 충절사는 공주 이씨 집안의 사당이다. 1806년 송은 이명성과 사봉 이명덕을 제향하기 위해 창사하였다. 이명성의 본관은 공주(公州)로 목은 이색에게서 수학하고 포은 정몽주와 교유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경기도 이천의 산중에 은거하여 나오지 않았다. 이명덕은 이명...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 사상은 전통적인 지리학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는 경험 과학이다.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기반으로 주역의 체계를 주요한 논리 구조로 삼으며, 추길피흉(追吉避凶)을 목적으로 하는 상지 기술학(相地技術學)이다. 전통 시대에 효(孝)의 관념(觀念)이나 샤머니즘과 결합되어 이기...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향·소·부곡은 군현 아래 편성된 특수 행정 구역이었다. 향(鄕)과 부곡(部曲)은 삼국 시대부터 있었지만, 소(所)는 고려 시대에 생겼다. 향과 부곡은 주로 농경에 종사하면서 국가에 대하여 공역의 부담을 지는 반면, 소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 및 지류·자기·묵 등 특정 공납품을 생산하였다....
-
통일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호족이란 주로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의 사회 변동기에, 변동을 주도한 계층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진안 지역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문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당시 진안과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진안 지역의 호족 세력을 고찰하...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서 황희 정승과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서 전해오는 「황희 정승과 농부」 이야기는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가 소 두 마리를 몰아 밭을 가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냐고 묻자 농부가 짐승도 자기 단점을 말하면 싫어하므로 귓속말로 이야기해 주었다는 내용이다. 이 일을 교훈 삼아 황희 정승이 청렴결백하게...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문헌 기록이나 명문 기와 등 절의 이름을 밝혀주는 자료가 없어 절터의 유래와 연혁은 알 수 없고, 절 내에 고려 시대 양식을 띠는 회사동 석탑만이 고려 시대 운영되었음을 알려준다.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회사 마을 입구에서 마을 회관을 지나 동쪽으로 회사길을 따라 160m 정도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