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황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889
한자 長水黃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550년 - 황징 입향
본관 장수 - 전라북도 장수군
입향지 장수 황씨 입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황경(黃瓊)
입향 시조 황징(黃澄)

[정의]

황경(黃瓊)을 시조로 하고, 황징(黃澄)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는 중국인인 황락(黃洛)이다. 황락은 공무로 바다를 건너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다가 신라 경순왕 때 지금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면에 도달하여서 신라에 귀화하였다. 황락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가 평해 황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가 장수 황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셋째가 창원 황씨의 시조가 되었다.

장수 황씨의 시조는 경순왕의 부마로 시중을 지낸 황경(黃瓊)이라 한다. 황경의 9세손인 황공유(黃公有)는 고려 명종 때 권신들을 피해 고향인 장수로 돌아왔다. 이후 황경의 15세손인 황감평(黃鑑平)이 있으나 이후 세계가 실전되었다. 그래서 시조의 18세손인 참의를 지낸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고 장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고 있다.

이후 2세 황균비(黃均庇), 3세 황군서(黃君瑞)를 거쳐 4세에 와서 황중수(黃中粹)와 익성공 황희(黃喜)로 갈라진다. 황중수에서 황경돈(黃敬敦)과 황경지(黃敬止)로 나뉘고, 황희의 후손은 황치신(黃致身)[호안공파], 황보신(黃保身)[소윤공파], 황수신(黃守身)[열성공파], 황직신(黃直身)[사직공파]으로 나뉜다.

[입향 경위]

진안에는 황희의 둘째 아들 한성 소윤 황보신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장수 황씨로 진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황희의 5세손인 호조 참의 황징(黃澄)이다. 황징은 1550년(명종 5)에 상주에서 안천면 백화리로 들어와 거주하였고, 지금도 황징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후 익성군 황희의 17대손인 황경후(黃景厚)가 용담에서 상전면 수동리로 들어와 살았다.

[현황]

장수 황씨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상전면 수동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국 4만 5567호에 14만 6575명, 전라북도 3,619호에 1만 1124명, 진안군에는 157호에 436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안천면 백화리 중배실 마을에 있는 화산 서원(華山書院)은 황보신(黃保身)과 황징(黃澄)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서원에는 석지채용신이 그린 「황방촌 영정」[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9호]이 소장되어 있다.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평지 마을에 황관현(黃觀顯) 처 진안 이씨 기적비, 안천면 백화리 중배실 남쪽 도로변에 황대성(黃大成) 처 옥천 육씨 정려비, 같은 마을에 황문찬(黃玟燦)의 정려가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참의 황석부는 증참의로 수정해 주시오.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관해 확인 가능한 자료를 보내주시면 검토후 반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1.23
연원 중에서, 우리나라 황씨 시조라는 락부터 창원황씨 시조가 되었다. 까지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1500년 경에 지어낸 이야기 일 뿐이니 삭제해야 됩니다.
전설도 아닌 지어낸 이야기를 믿게 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안천면 백화리 황씨에게는 허위 글입니다.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관해 확인 가능한 자료를 보내주시면 검토후 반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1.23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