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442
한자 建築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해경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이나 기술 또는 그 구축물.

[개설]

건축은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담고 있는 총체적인 주거 문화의 산물이다. 진안 지역의 건축 문화는 진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주거 문화의 총 본산이다.

진안은 전라북도 동부 산악 지방인 노령 산맥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고원 지대이며 동고서저의 계단식 지형을 이루고 있다. 전체 면적의 82.4%가 산악 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발 200m 이상의 높은 지형을 형성하고 있어 진안고원이라고도 한다. 진안 지역의 건축 문화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건축 문화가 형성되었다. 진안의 건축은 주로 조선 시대 이후의 건축이 남아 있는데 사찰은 천황사, 향교는 진안 향교용담 향교, 누정은 개안정·수선루·영모정·태고정·고무정·만취정·쌍계정·쌍벽루·우화정·충목정·하정각·학남정, 민가는 운교리 전송훈 가옥·강정리 전명권 가옥·강정리 전영표 가옥 등이 대표적이다.

[선사 건축]

한반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직후부터 진안에서도 주생활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용담댐 발굴 조사에서 정천면 모정리 진그늘 유적을 발굴한 결과 전라북도에서는 처음으로 구석기 유적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 제작소 20여 개소와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고 몸돌과 함께 격지, 돌날, 좀돌날, 슴베찌르개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갈두 유적을 비롯하여 상전면 용평리 유적, 갈용리 농산 유적, 모정리 진그늘 유적 등지에서 토기 및 석부, 굴지구 등이 출토되어 농경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사찰 건축]

전라북도 진안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사찰 건축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사찰 건축으로는 천황사 대웅전이 있다. 천황사는 875년(신라 헌강왕 1)에 무염 선사(無染禪師)가 세우고 1064년(문종 18)에 대각 국사 의천(義天)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학조(學照)·애운(愛雲)·지견(智堅)·혜명 대사(慧明大師) 등이 중창하였다. 현재 가람은 정형적인 양식을 유지하지 못하고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과 요사채가 있다.

[유교 건축]

향교는 진안 향교용담 향교가 있다. 진안 향교는 조선 태종 14년에 창건하였으나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선조 34년에 중건하였다. 이후 인조 14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성전은 1632년(인조 10)에 초창되어 부분적으로 보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명륜당은 배면이 정면으로 된 전당 후재(前堂後齋)형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용담 향교는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현령 최자비(崔自俾)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33년에 현령 오전이 중건하였고, 그 뒤 1664년(현종 5)에 현령 홍석이 개축하였다.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 후묘형이며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교직사 등이다.

진안 향교는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배치와 건물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용담 향교용담댐의 수몰로 인하여 용강산 기슭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것으로 지역의 변화에 의한 건축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민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민가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진안이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 지방인 관계로 해발 200m 이상의 높은 지형을 형성하고 있고 전체 면적의 82.4%가 산악 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이며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농토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로 인하여 전라북도 지방의 살림집이 일반적으로 ‘ㅡ’자형의 평면에 부엌과 방, 대청으로 구성되는데 반하여 이 지역에서는 방과 도장이 모여 있는 반겹집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집의 구조에 있어서 주거 형태의 가장 기본적인 형인 모임지붕 형식의 움집이 진안군 성수면 달기리 김대근 가옥에서 보이고 있다. 또한 건축 재료적인 측면에서 북부 지방이나 산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귀틀집 양식인 고지집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민가에서 곡물을 중시하는 공간인 도장이나 둑집 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류 가옥의 유형으로 강정리 전명권 가옥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이나 운교리 전송훈 가옥 등이 있다.

진안의 상류 가옥으로는 운교리전송훈 가옥강정리전명권 가옥강정리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이 있다. 이들 3집은 근대기에 건축된 진안 지방의 상류층 가옥이다. 운교리 전송훈 가옥은 1916년에 지었는데 대문간채를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ㅡ’자형 건물로 동향으로 배치하였으며 좌측 1칸은 부엌으로 사용하고 우측 4칸은 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방의 전면에는 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중앙 2칸은 전퇴로 구성하여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강정리 전명권 가옥은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근대에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안채를 중심으로 우측에 부속채, 좌측에 헛간채가 'ㄷ'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의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부엌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 방 2칸의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은 1924년에 건축한 2층 한옥인데 마이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광대봉을 주산으로 하여 용두봉을 좌청룡으로 하고 성산을 우백호로 감싸 안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에는 섬진강 상류 지류가 흐르고 있으며 내동산이 안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즉,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명당 형국으로 연화도수형의 연꽃 자리 중심부에 이 집이 위치하고 있어 진안 8대 명당 중의 한 곳이라고 한다.

배치는 안채를 중심으로 우측에 아래채, 좌측에 곳간채가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동남향으로 ‘ㅡ’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전면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후면에는 장독대가 위치하고 있다. 아래채는 ‘ㅡ’자형으로 안채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곳간채는 본래 창고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나 자녀의 결혼에 따른 분가로 인하여 우측에 방과 세면실을 개조하였다.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건축 중에 고지집이 있는데 이는 통나무나 죽각재를 가로로 포개어 벽체를 쌓는 귀틀집 양식이다. 진안에 있는 고지집은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비사랑 마을에 있는데 주로 산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귀틀집이다. 귀틀집은 진안 지방에 여러 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귀틀집을 보면 진안 사람들은 자연환경을 반영하여 주거 문화를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둑집은 벼를 담는 수장고로 나락 두지, 두 대통, 볏 두지 등으로 불리는데 호남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진안의 둑집은 2채가 남아 있는데 덕현리 윤기 마을 최석현 가옥의 둑집은 대문 바로 앞 오른쪽에 있으며, 또 하나는 동창리 은번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진안에는 사찰 건축, 유교 건축을 비롯하여 지역의 자연환경을 반영한 민가, 고지집, 둑집 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건축물은 진안 지역의 자연환경과 농경 사회의 일면을 주거 문화 속에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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