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37
한자 全文軾
이칭/별칭 문영(文英),도은(都隱),문평(文平)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71년 - 전문식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389년 - 전문식 정당문학 제수
사당|배향지 진안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영산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강정 마을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천안(天安)
대표 관직 대제학

[정의]

조선 전기 천안 전씨 진안 입향조.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문영(文英), 호는 도은(都隱). 시호는 문평(文平). 증조할아버지는 판공부사(判工部事)를 지낸 영평군(永平君) 전단(全旦)이고 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한 전려(全呂)이고 아버지는 좌복야(左僕射) 전희(全熙)이다. 어머니는 시중을 지낸 윤은형(尹殷衡)의 딸이다. 모두 고려 때 벼슬한 사람이다.

[활동 사항]

전문식(全文軾)[?~?]은 1367년(공민왕 16)에 성균관을 창설하여 포은 정몽주(鄭夢周)을 국자 좨주(國子祭酒)로 삼았고, 경술(經術)이 뛰어난 선비를 뽑아 매일 명륜당(明倫堂)에서 경의(經義)를 강론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이 제수되었고 후에는 대사간을 역임한다.

1375년(우왕 1)에 김의(金義)가 명의 사신을 살해하고 북원(北元)으로 도망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나, 1386년(우왕 12)에 해배(解配)된 후 평안백(平安伯)이 되었다. 정몽주와 함께 공양왕(恭讓王)을 옹립한 공으로 형부상서사(刑部尙書事)에 올랐다가 정당문학을 지냈다. 1392년 김주(金澍)와 함께 명의 사신으로 갔다가 환국하는 길에 압록강 근처에서 이성계(李成桂)가 새 왕조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는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태조 이성계가 세 차례나 조정으로 나오라고 하였지만 모두 거절하였으며, 전국을 유랑하다가 마침내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江亭里)에 은거하였다. 전문식의 후손들이 진안에 세거(世居)하게 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였다. 한편 진안군 내의 천안 전씨 세거지는 마령면 강정리, 덕천리, 오동리와 성수면 도통리 등지에 있다.

전문식은 1400년(정종 2)에 이르러 정종의 간곡한 청으로 잠시 경상백(慶尙伯)을 지내게 되는데 이때 선정(善政)을 베풀었다는 평을 받았다. 만년에 치사(致仕)한 후로는 전국의 산수를 두루 유람하며 생을 보냈다.

[상훈과 추모]

전문식은 고려가 망하자 일생의 대부분을 방랑으로 보내면서 세상과는 등을 졌다. 일찍이 정몽주전문식을 가리켜 ‘일탁 세종 가공자(日濁世宗佳公子)’라 칭송했다고 한다. 세종 때 좌찬성 대제학(左贊成大提學)에 증직되었으며 문평(文平)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전문식의 위패는 진안 이산묘 영모사(永慕祠)와 영산사(靈山祠)에 배향되어 있다. 영산사(靈山祠)는 1832년(순조 32)에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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