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927
한자 李雲圭
이칭/별칭 수증(守曾),연담(蓮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순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거주|이주지 이운규 은거지 -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모촌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전주(全州)
대표 경력 참판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수증(守曾), 호는 연담(蓮潭). 별칭은 운규(雲圭). 세종의 열여덟째 아들인 담양군(潭陽君)의 13대손이다.

[활동 사항]

이운규(李雲圭)[?~?]는 천안 목천(木川)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문과 참판(參判)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흥선 대원군 이하응(李昰應)과 친밀하게 지냈다. 학통으로는 북학계의 강산 이서구의 뒤를 이었다.

국운이 쇠미하여지자 58세 때인 1862년 이후 서울을 떠나 연산 띠울[현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고 한다. 그곳에 은거하면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에게는 선교를 새롭게 탐구하여 ‘동학’을 창도하게 하고, 일부(一夫) 김항(金恒)에게는 유교를 새롭게 탐구하여 ‘정역(正易)’을 창도하게 하였다. 1879년 이전에는 진안 용담[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으로 옮겨 광화 김치인의 ‘남학[처사교, 오방 불교]’을 창도케 한 후에, 1888년을 전후하여 대불리를 떠나 고향인 목천으로 돌아갔다.

이운규의 주요 제자로는 아들 부연(夫蓮) 이용래(李龍來)와 일수(一守) 이용신(李龍信), 일부(一夫) 김항(金恒), 광화(光華) 김치인(金致寅)이 있다. 김항이운규가 은거한 연산 모촌리와 인접한 남산리(南山里)[현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에 거주하였다. 김항은 유·불·선(儒佛仙)에 해박한 이운규가 은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1861년 36세의 나이로 그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김치인이운규와 더불어 주로 이용래에게 나아가 수학하고 이용신의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유·불·선 합일 사상을 지향한 이운규의 계열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누어진다. 그 하나는 『주역(周易)』을 깊이 연구하여 『정역(正易)』을 저술한 김항 계열이다. 다른 하나는 아들 이용래와 이용신으로 계승되어 김치인에게 전승된 계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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