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락당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880
한자 -湛樂堂集-
이칭/별칭 담락당 시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담락당 시집』 간행
간행처 진안 문화원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중앙로 66[군하리 81-11]지도보기
성격 시집
저자 담락당 하립
역자 이명래
간행자 진안 문화원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에서 살았던 담락당 하립이 남긴 조선 후기 시문집.

[개설]

『담락당 시집(湛樂堂詩集)』하립이 남긴 시문집으로 전라북도 진안과 남원에 관한 시문이 많이 실려 있다. 특히 진안 마이산(馬耳山) 천지탑과 관련한 내용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하립의 부인은 『삼의당고』를 남긴 삼의당 김씨담락당삼의당은 부부 시인이었다. 마이산 탑영지(塔影池)에는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시비(湛樂堂河氵昱·三宜堂金氏夫婦詩碑)’가 세워져 있다.

[저자]

하립(河氵昱)[1769~1830]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문효공 하연(河演)[1376~1453]의 11대손 하경천(河經天)의 다섯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하연세종 때 영상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는 집안이 영락하자 담락당의 증조부 대에 진안 마령 땅에 내려와 살다가 조부 때 남원으로 옮겨 살았다. 이후 담락당이 32세 되던 1801년에 다시 진안 마령 땅으로 이거하였다. 부인은 『삼의당고』를 남긴 삼의당 김씨이다. 이들 부부의 묘는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 쌍봉으로 조성되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삼의당 김씨가 여류 시인으로 조명을 받으면서 삼의당 김씨의 부군인 담락당 하립도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에 진안 문화원에서 하립『담락당집(湛樂堂集)』을 이명래(李明來)에게 번역 의뢰하여 2000년에 시집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집안에서 전하던 『담락당집(湛樂堂集)』을 2000년에 진안 문화원에서 이명래 번역의 『담락당 시집(湛樂堂詩集)』으로 출간되었다.

[구성/내용]

『담락당 시집』에는 「교가정(敎家庭)」 5수를 포함하여 오언절구 58수와 「담락당 팔락(湛樂堂八樂)」, 「담락당 팔영(湛樂堂八詠)」, 「담락당 잡영(湛樂堂雜詠)」 등 칠언절구가 실려 있으며, 오언율시 11수와 칠언율시 44수가 수록되어 있다.

벼슬에 뜻을 두고 산사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 과거 급제를 목적으로 두 차례 서울에 올라가 공부하면서 세도가에게 ‘생강·오미자·담배’ 따위를 선물하는 정경, 떨어져 있는 아우에게 보내는 시 등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낙향해서 달관한 태도로 산수 자연을 즐기며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들이다. 특히 진안과 남원에 관한 시문이 많고, 마이산 석탑에 관한 시도 상당수 실려 있어 지역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담락당의 시는 그의 부인이자 여류 시인이었던 삼의당 김씨로 인해 조명 받고 있다. 우리나라 한문 문학사에서 부부 시인으로는 이들이 유일한데다가 이들 부부간에 오고간 시문들은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는 남원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가문이나 글재주가 서로 비슷하여 주위에서 천생배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고 한다. 삼의당담락당의 독서와 면학을 권장하였으며, 담락당은 부인 삼의당이 거처하는 집의 벽에 글씨와 그림을 가득 붙이고 뜰에는 꽃을 심어 ‘삼의당’이라 부르며 서로를 존중하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데다가 담락당이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자 부부는 진안으로 이주하여 시문으로 화답하며 살았다. 이들은 조선 시대에 실로 서로를 존중하며, 시로 사랑을 나눈 부부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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