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752
한자 -明堂德-黃喜政丞-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3년 8월 15일 -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진안 지방의 구전 설화집』에 수록
채록지 원운교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지도보기
성격 풍수담|탄생담
주요 등장 인물 제주도 관찰사|스님|황희 할아버지
모티프 유형 명당 풍수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전해오는 황희 정승의 탄생 배경에 관한 이야기.

[개설]

진안군 백운면에서 전해오는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설화는 황희 정승의 탄생 배경인 명당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황희의 할아버지가 곤경에 처한 어느 스님을 도와준 덕분에 명당 혈처에 조상의 묘를 썼고 황희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황희는 조선 초기 50년 이상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던 대표적인 재상이다. 민중 사이에는 그의 도덕성과 청빈한 삶에 관한 많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는 인간미 넘치는 설화가 많이 전승된다.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설화 외에도 황희와 관련하여 잘 알려진 설화로는 「먹물 쏟은 종도 하늘이 내려준 백성」, 「배 따던 아이들에게 배 갖다 주기」, 「면천시킨 종 아이의 장원 급제」, 「네 말도 맞다」, 「송아지와 제사」, 「검정 소와 누렁 소」, 「관기 폐기론」, 「자백의 강요」, 「멍석 방바닥」 등이 있다. 이 설화들은 주제별로 크게 타인 배려형, 청빈형, 합리적이나 엄격형으로 나눌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은 2003년 8월 15일에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원운교 마을에서 황인덕이 주민 정영수[남, 70대]로부터 채록하여 『진안 지방의 구전 설화집』[진안 문화원, 2003]에 수록하였다.

채록 당시 제보자 정영수는 풍수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명당에 얽힌 전설이나 지역과 관련된 인물 전설을 주로 구연하였으며, 장면이나 대화를 실감나게 살리는 구연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전설 구연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거나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재미나 오락성도 어느 정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결과라 하겠다.

[내용]

제주도 관찰사가 어떤 스님에게 묏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일천 냥을 주었다. 그 스님은 황곡단풍이라는 좋은 형국을 찾았으나 결정적인 혈처를 못 찾고 있었다. 먼 곳에서 보면 그곳이 명당인데 가까이 가면 혈처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다 우연히 제주 관찰사가 길에서 스님을 만났다. 관찰사는 아직도 혈처를 못 잡았냐고 따지다 ‘이런 도둑놈이 없다’고 하면서 ‘중놈 하나 죽여도 괜찮다’며 스님을 말꼬리에 매달고는 끌고 다녔다. 그 찰나에 방촌 황희의 할아버지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사연을 물은 뒤 일천 냥을 대신 갚아주었다.

이어 황희의 할아버지가 스님을 안으로 모신 뒤 며칠을 쉬게 하였는데, 명당 혈처가 훤하게 나타났다. 스님은 ‘주인이 따로 있구나’라고 감탄하면서 “이 자리에 묘를 쓰시오. 다만 부(富)는 없고 귀(貴)만 있소이다.”라고 하였다. 스님이 알려준 대로 황희의 할아버지는 조상 묘를 썼고 황희 정승이 태어났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설화는 조선 시대의 학식이 높은 명재상 황희라는 인물의 탄생과 관련지어 명당 풍수 모티프가 결합된 형태의 이야기이다. 황희는 고려 말 난세에 태어났으나 조선 초 4대 왕을 거치면서 중앙 정치의 중심에 서서 조선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중대한 과업을 이루어 낸 인물이다. 황희세종 때 18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사실상 그는 충녕대군, 즉 세종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가 서인이 되어 유배를 갔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듯 비범한 역사 인물이다 보니 황희의 탄생에 관한 설화가 없을 수 없다. 그래서 결합된 것이 스님과 명당 풍수이다. 스님은 흔히 도사나 신선과 동일시된다. 즉 도술을 부릴 수 있으며, 남이 갖지 못한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인물로 묘사된다. 「명당 덕에 태어난 황희 정승」 설화에서도 결국 결정적인 혈처를 찾아내어 황희라는 명재상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제공한 인물인 것이다.

풍수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의 생활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특히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개인이나 집안의 번성과 길흉화복을 조상 묘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그 중 명당 풍수는 묏자리와 관련된 음택 풍수로, ‘같은 기운끼리는 서로 감응한다.’는 동기 감응(同氣感應) 사유를 통해서 개인이나 가문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이 조상 묏자리와 직결된다는 관념 체계를 갖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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