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매는 소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714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현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2년 - 「밭매는 소리」 장길동으로부터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2년 - 「밭매는 소리」 손정진으로부터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92년 - 「밭매는 소리」 하순금으로부터 채록
채록지 월평리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월평리 지도보기
채록지 갈용리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지도보기
채록지 중평리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평리
채록지 봉암리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 지도보기
채록지 황금리 가치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지도보기
채록지 동창리 석전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석전길 1[동창리]지도보기
채록지 동창리 화산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 지도보기
채록지 노촌리 하미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지도보기
채록지 운교리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지도보기
채록지 동촌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원동촌길 17-6[동촌리]지도보기
채록지 덕현리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원덕길 51[덕현리]지도보기
채록지 용포리 포동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용포리 지도보기
채록지 자산리 대야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자산리 613-1 지도보기
채록지 주천면 주양리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지도보기
채록지 능금리 외금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외금1길 53[능금리]지도보기
채록지 대량리 상양지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상양지2길 8 지도보기
채록지 가막리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가막리 지도보기
채록지 반월리 원반월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원반월길 45[반월리]지도보기
채록지 거석리 상거석 노인정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지도보기
채록지 무릉리 어자 마을 회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 지도보기
성격 노동요
가창자/시연자 이순자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동창리 부녀자들이 밭을 매면서 부른 노동요.

[개설]

진안의 「밭매는 소리」에는 “못다 맬 밭 다 맬라다 금봉채를 잃었느니/ 걱정 말소 내가 전주장으를 가서/ 송방송방 다 더터서 내 사다 줌세”라는 가사가 많이 등장한다. ‘금봉채’는 ‘금비녀’의 진안 사투리이다. 비녀는 여인들의 필수적인 장신구인데, 하루해가 졌는데도 남은 밭을 매다가 비녀를 잃었다는 상황으로 미루어 노동으로 인한 여인들의 한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밭매는 소리」는 진안군 여러 지역에서 채록되었다. 국립 문화재 연구소에서 1982년에 발간한 『전라북도 국악 실태 조사』에는 정천면 월평리 주민 장길동[남]과 정천면 갈용리 주민 손정진[남]으로부터 채록한 「밭매는 소리」가 수록되어 있다. 1992년에 진안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간한 『진안 군지』에는 성수면 중평리 주민 하순금[여]으로부터 채록한 「밭매는 소리」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한국학 중앙 연구원 어문 생활 연구소와 안동 대학교 민속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개정·증보 사업’ 전북 조사팀의 조사 결과 진안군 여러 지역에서 채록되었으며,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 웹 서비스[http://gubi.aks.ac.kr/web]에서 여러 제보자들이 가창한 「밭매는 소리」 자료 텍스트와 연동되는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다. 채록 시기와 내용은 각각 다음과 같다.

2010년 1월 18일 부귀면 봉암리 주민 장윤자[여, 1928년생], 2010년 1월 22일 부귀면 황금리 주민 이정순[여, 1940년생], 2010년 2월 1일 백운면 동창리 주민 이순자[여, 1932년생], 2010년 2월 1일 백운면 동창리 주민 이순자[여, 1943년생], 2010년 2월 1일 백운면 동창리 주민 최금순[여, 1932년생], 2010년 2월 2일 백운면 노촌리 하미 마을 주민 김평연[남, 1932년생], 2010년 2월 3일 백운면 운교리 주민 정종근[남, 1924년생], 2010년 2월 4일 마령면 동촌리 주민 하순덕[여, 1931년생], 2010년 2월 6일 백운면 덕현리 주민 김금이[여, 1934년생], 2010년 2월 21일 성수면 용포리 주민 차영자[여, 1930년생], 2010년 2월 23일 동향면 자산리 주민 전언년[여, 1934년생]·성영애[여, 1930년생], 2000년 2월 24일 주천면 주양리 주민 박영순[여, 1925년생]·김덕임[여, 1934년생], 2010년 2월 24일 동향면 능금리 주민 김분임[여, 1922년생], 2010년 2월 24일 동향면 대량리 주민 박간출[여, 1934년생], 2010년 2월 25일 진안읍 가막리 주민 김종순[여, 1933년생]·박족간[여, 1932년생], 2010년 3월 4일 진안읍 반월리 주민 차영옥[여, 1938년생], 2010년 3월 4일 진안읍 반월리 주민 김복순[여, 1921년생], 2010년 3월 31일 부귀면 거석리 주민 황옥례[여, 1928년생], 2010년 3월 31일 주천면 무릉리 주민 성점분[여, 1936년생] 등이다.

[구성 및 형식]

진안의 「밭매는 소리」는 메김과 받음이 없이 돌아가면서 한 절씩 부른다. 동일한 가창자가 소리를 하는데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사가 다르게 시연되는 것은 정해진 가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창자의 창의성이 많이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

못다 맬 밭 다 맬라다 얻었던 인심을 잃고나 가네/ 어서 매고 우는 애기 젖 주러 가세/ 못다 맬 밭 다 맬라다 금봉채를 잃고나 가네/ 호박 넝쿨 박 넝쿨 왜 저리 좋아/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내 모른데/ 호박 넝쿨 박 넝쿨 왜 저리 좋아/ 정지 구석 들여다보니 살 동 말 동/ 선각산 중터리 비 오나 마나/ 어린 가장 품 안에 잠자나 마나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진안은 산간 고랭 지역이라서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훨씬 많았다. 때문에 「밭매는 소리」가 많이 채록되고 있다. 밭을 매는 것은 주로 여인들의 몫이었던 만큼 진안의 「밭매는 소리」에는 밭일과 가사로 힘들어하던 여인들의 신세 한탄이 많이 등장한다. 어린 아이 젖도 줘야 하고 보리쌀 씻어 저녁밥도 지어야 하는데, 맬 밭고랑은 많이 남고 해는 진다. 이런 와중에 여자의 장신구인 금봉채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진안의 「밭매는 소리」는 바느질, 길쌈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인들의 노동 현장 속에서 전승된 노래이다.

[현황]

밭 맬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르던 「밭매는 소리」는 2013년 현재 몇몇 노인들만이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윤자의 「밭매는 소리」에는 “석탄 백탄 타는 데 연기는 포올속 나고요”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석탄이 탈 때는 많은 열을 수반하는데, ‘석탄’을 강조하기 위해 ‘백탄’이라는 단어를 등장시켜 훨씬 강한 열을 내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밭을 맬 때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애통대통 일을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아낙의 가슴은 타들어 가는데 호미질 하는 땅에서는 연기가 ‘포올속’ 인다. ‘포올속’이라는 말을 현대 문학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밭매는 소리」는 민중들이 불렀지만 언어 구현 능력이 대단한 경지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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