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563
한자 -鎭安縣水源白氏古文書-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북대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급 시기/일시 1786년 - 「진안현 수원 백씨 고문서」 중 백상연의 준호구 발급
작성 시기/일시 1884년 - 「진안현 수원 백씨 고문서」 중 백진형 호구 단자 제출
작성 시기/일시 1899년 - 「진안현 수원 백씨 고문서」 중 백진형 신호적 제출
소장처 진안 역사박물관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내사양길 7[단양리 813]지도보기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백시문|백여휘|백상중|백상연|백희휴|백치회|백치형|백진형
용도 호적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진안현 수원 백씨의 고문서.

[개설]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된 「진안현 수원 백씨 고문서」는 1786년부터 1901년까지의 준호구, 호구 단자, 신호적, 소지, 서목 등 다양한 문서 약 28건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 3년마다 호적을 작성했는데, 호주는 자신의 가족 상황과 변동 유무를 단자(單子)로 만들어 2부씩 해당 관청에 제출하면 관청에서 확인인을 찍어준다.

호적 대장이 만들어지면 관에서는 이를 증빙하는 의미에서 혹은 이런 저런 요구에 의해 호적 대장의 기록을 다시 등사하여 주었는데, 이를 준호구라고 하였다. 준호구란 호적 대장에 근거하여 관에서 발급한 것이니 오늘날의 주민 등록 등본 혹은 호적 등본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호구 단자와 준호구는 호적을 증명하기 위해 개인과 관청이 서로 주고받는 문서이지만 그 형식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호구 단자는 별행인 반면에 준호구는 계속 이어 기록된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단자의 첫머리는 면 단위 이하의 거주지명과 호구 단자 혹은 호적 단자 라고 표기되지만, 준호구에서는 발급 연도와 관청에 이어 근거가 된 호적의 식년이 기재된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구성/내용]

1786년(건륭 51)에 전라북도 진안 지역 용담현 이남면(二南面) 비대리(鼻大里)에 사는 40세 유학 백상연(白尙連)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백상연의 아버지는 여휘(汝輝), 조부는 시문(時文), 증조는 광직(光職)이며, 부인은 경주 최씨로 당시 40세였다.

「진안현 수원 백씨 고문서」는 백여휘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 백희휴에게 발급한 준호구와 백희휴가 작성하여 제출한 호구 단자, 백치회가 작성하여 제출한 호구 단자, 백경순이 작성하여 제출한 호구 단자와 백진형이 작성하여 제출한 신호적 등이다.

이를 통해 백상연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백시문-백여휘-백상중/ 백상연-백희휴-백치회/ 백치형-백진형으로 이어진다. 특히 백진형은 1884년(광서 10)에 당시 나이 42세로 호구 단자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는데, 이어서 1899년에는 57세의 나이로 신호적을 제출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용담현 이남면 비대리에 거주하던 수원 백씨 백상연 가의 호구 단자가 여러 가지 고문서 형태로 남아 서로 내용을 보완할 수 있고, 문서의 변용 등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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