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이희식 교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556
한자 -孝子李希植敎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344-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급 시기/일시 1893년연표보기 - 「효자 이희식 교지」 발급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12월 30일연표보기 - 「효자 이희식 교지」 진안군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2호로 지정
소장처 이부용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344-1 지도보기
성격 문헌|고문서
관련 인물 이희식
용도 증직
문화재 지정 번호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2호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의 이부용이 소장하고 있는 효자 이희식에게 내린 증직 교지.

[개설]

「효자 이희식 교지」는 1998년에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2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희식의 후손 이부용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이다.

[제작 발급 경위]

교지(敎旨)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 관작, 자격, 시호, 토지, 노비, 특전 등을 내려줄 때 쓰는 문서이다. 각각의 목적에 따라 고신(告身), 홍패, 백패, 추증 교지, 사패, 사시 교지(賜諡敎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보통 문서의 형식을 쓴 후 교지 수령자, 수혜 내용, 그리고 교지 발급 날짜 등을 순서대로 쓴다.

[형태]

「효자 이희식 교지」의 크기는 세로 55㎝, 가로 75㎝이다.

[구성/내용]

효자 이희식의 증직 교지는 1882년(광서 19)에 효행이 남달랐던 효자 이희식(李希植)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하고 종4품에 해당하는 조봉대부(朝奉大夫)라는 품계를 내린 교지이다[學生 李希植 贈童蒙敎官 朝奉大夫者 光緖 19年 7月 日, 傳 孝行卓異 贈職事承]. 남편이 증직이 됨에 따라 부인 해주 오씨도 법전에 따라 종4품의 영인(令人)에 추증한 교지를 함께 받았으며, 이 교지 또한 소장되어 있다. 이희식과 부인 해주 오씨이덕응(李德應)[1866~1949]의 부모이다.

이덕응은 본관은 전주이며 덕흥 대원군의 후손이다. 호는 수당(守堂)이며 서울 남산골에서 출생하였다. 조부는 사헌부(司憲府) 이지평(李持平), 부는 동몽교관 이희식,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이며, 간재(艮齋) 전우(田遇)와 교유가 있었다. 일찍이 궁내부(宮內府) 판임관(判任官)을 지냈으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진안으로 내려와 주천면 대불리에 화양도원(華陽道院)을 열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승하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화양산(華陽山)에 올라 통곡하였고, 그후 3년 동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제자들과 더불어 이곳에서 망곡(望哭)하였다. 국운을 되살리고자 전국의 7개소에 황단(皇壇)을 설치할 것을 상소하였는데, 순종은 이를 받아들여 고종 황제의 어진(御眞)을 하사하며 선생을 삼극사(三極使)로 임명하였다.

[의의와 평가]

수당 이덕응고종 재위 기간 동안 궁내부 관리를 지냈고, 후에 진안군에 내려와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고종이 승하한 후에는 주천면 대불리 화양산에서 망곡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황단 대제를 지내고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시기 진안에서의 수당 이덕응 선생의 행적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이외에도 후손 이부영이 소장한 다수의 고문서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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