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400
한자 長才洞公所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추장길 142[덕천리 1360-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태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공소 설립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장재동 공소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8년 11월 19일 - 장재동 공소 축복식 거행
이전 시기/일시 1964년 11월 - 장재동 공소 건물 이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8년 11월 30일 - 장재동 공소 성모상 축복식 거행
현 소재지 장재동 공소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추장길 142[덕천리 1360-7]지도보기
성격 공소
설립자 보두네 신부
전화 063-433-6011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에 있는 천주교 공소.

[개설]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에 있는 장재동 공소는 진안 지역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설립된 공소이다. 1883년에 인근의 가래올[추동]로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이주해 오면서 신앙생활이 시작되었고, 1890년도에는 장재동에도 신자들이 이주해 오면서 공소가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장재동 공소는 가래올과 장재동 지역의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890년에 설립된 장재동 공소는 설립 당시 27명이었던 신자가 1910년에는 106명이 될 정도로 꾸준히 교세가 늘어났다. 1918년에 건물이 설립되자 드망즈 주교는 1918년 11월 18일에 장승백이에서 장재동으로 와서 3일간 머무르며 찰고(察考)와 성사를 주었으며, 1918년 11월 19일에 성 미카엘을 주보로 장재동 성당을 강복하였다.

어은동 성당에서 한들 성당으로 이전하던 시기에는 이전을 결심한 이상화 신부가 1922년 6월 장재동 공소에 임시로 거처하기도 하였다. 1926년 가을에는 영신회가 창립되는데 여자 교우 30명이 연미사와 감사 미사를 위해 활동하였다. 6·25 전쟁 당시에는 강원도에서 피난 온 조 신부가 장재동으로 피신하였다. 1964년 11월 공소 건물을 이전하였고, 1988년 11월 성모상 축복식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현재 장재동 공소에서 정기적인 미사는 없으며 주일 미사는 진안 성당에서 지내고 있다.

[현황]

2014년 1월 현재 장재동 공소 신도 수는 58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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