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택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365
한자 麗澤軒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천리 7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4년 12월 18일 - 여택헌 설립 추진
건립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여택헌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여택헌 훼철
원소재지 여택헌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천리 78]지도보기
성격 사당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안에 있던 사우.

[개설]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여택헌(麗澤軒)이산묘 건립 초기 이산 정사(駬山精舍) 때 인지재(仁知齋)와 함께 모두 4칸으로 세워진 사우(祠宇)이다.

[위치]

여택헌국도 30호선을 따라 진안으로 가다가 화전 삼거리에서 마이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이산묘가 있다. 여택헌이산묘 안에 있었다.

[변천]

1924년 12월 18일에 충청남도 공주의 숙모전(肅慕殿)에서 개최된 경향 유회(京鄕儒會)에서 진안 대표 오채열(吳采烈)의 제안으로 설립을 추진하여 1925년 3월에 건축을 시작하였다. 서쪽은 ‘인지재(仁知齎)’라 하고 동쪽은 ‘여택헌(麗澤軒)’이라 하였다. 이후 조선 총독부의 방해와 파괴 공작으로 1927년에 훼철되었다.

[형태]

여택헌의 건립 당시 형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사당은 모두 4칸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황]

여택헌은 현재 훼철되어 현존하지 않고 소산 박성우가 쓴 현판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여택헌이산묘의 전신인 이산 정사의 사우 중 하나였다. 이산묘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을 배향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하기 위한 건물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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