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136
한자 金永祚
이칭/별칭 금광빈부(金光彬夫)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김영조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 김영조 아버지 일본으로 이주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김영조 와세다 대학 야구부로 이적
활동 시기/일시 1944년 - 김영조 와세다 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4년 - 김영조 프로 입단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김영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4번 타자로 출전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김영조 현역 은퇴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김영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코치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71년 - 김영조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감독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김영조 사망
출생지 김영조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성격 야구인
성별
본관 광산(光山)
대표 경력 야구 국가 대표 감독

[정의]

진안 출신의 체육인.

[개설]

김영조는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포수 출신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1960년대 한국 야구계를 풍미하였다.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길현이고 어머니는 박성녀이다. 자식으로는 1남 2녀가 있는데 외아들인 김승수는 야구 대표 선수를 지냈다.

[활동 사항]

김영조(金永祚)[1923~1981]는 진안군 주천면에서 태어났다. 1930년 8세에 어머니, 세 누이와 함께 3년 전 미리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를 쫓아 일본으로 갔다. 이때 아버지는 일본에서 식당업을 하기 위해 인삼밭을 매각했다고 한다.

일본 데이쿄 상고를 거쳐 1943년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였다. 테이쿄 상고 시절에는 4번 타자 겸 주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1944년 프로로 전향하여, 4월 22일에 대타로 출전하여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렸다. 이것은 일본 프로 야구역사에서 첫 타석 첫 홈런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45년 귀국한 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 조미 친선 대회에 8·15 해방 후 최초로 구성된 조선 대표팀 포수로 출전하였으며, 이후 남전, 식산 은행을 거쳐, 1948년 지금의 농협 전신인 ‘금융 조합 연합회’의 감독 주장 겸 선수로 전국 실업 추계연맹전에 출전하여 명포수 겸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1949년 제5회 한성 실업 춘계 연맹전에 출전하였다. 이후 1954년 제1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를 비롯하여, 55년 2회, 59년 3회 대회에서 부동의 4번 타자 겸 포수로 국가 대표 선수 생활을 했다. 1963년 국가 대표 팀 코치로 발탁,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서울] 첫 패권을 일궈냈고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1971년에는 대표팀 감독으로 제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김영조가 1944년부터 활동한 소속팀은 다음과 같다. 일본 아사히[1944]부터 조선 식산 은행[1946~1947], 금융조합[1947~1955], 경기 중학교 감독[1949], 중앙 고등학교 감독[1955~1959], 농업 은행[1956], 공군[1956~1957], 한국 운수[1958], 농업 은행[1959], 농협 감독[1960~1972] 등이다.

[상훈과 추모]

김영조가 선수 및 감독 활동을 할 때 받은 상은 총 17개이다. 선수시절 받은 상으로는 1949년에 제4회 월계기 쟁탈 도시 대항 타격상, 1950년에 제5회 월계기 쟁탈 도시 대항 타격상, 1954년에 제9회 월계기 쟁탈 도시 대항 홈런상, 1955년에 제1회 전국 실업 쟁패전 홈런상, 제10회 월계기 쟁탈 도시 대항 홈런상, 1956년에 제2회 전국 선수권 홈런상이 있다.

감독 활동으로 받은 상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매년 대통령배 실업 추계 연맹전 우승 감독상을 받았으며 이외에도 1962년에 제6회 한미 친선 홈런상, 제8회 전국 선수권 우승 감독상, 제12회 백호기 군실업 쟁패전 우승 감독상, 1963년에 제13회 백호기 군실업 쟁패전 우승 감독상, 1965년에 대통령배 실업 연맹전 준우승 우수 감독상, 1971년에 제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우승 감독상을 받았다. 또한 제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우승 공로로 국민 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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