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수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121
한자 黃海水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황해수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 3·1 운동 발발
몰년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황해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황해수 대통령 표창 수상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황해수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황해수 출생지 - 전라북도 임실군
활동지 황해수 활동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장수(長水)

[정의]

일제 강점기 진안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장수(長水).

[활동 사항]

황해수(黃海水)[1894~1948]는 1919년 3월 23일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 장날을 이용하여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 등과 3·1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 오후 2시 오수리 장터에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중심이 된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시위 행진하였다. 둔남면사무소에서 면장, 면서기들과 독립 만세를 외치고 주재소로 가서 유치장 문을 부수고 구금된 사람들을 석방시켰다. 1919년 4월 6일에는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뒷산에서 오기열(吳基烈)·전영상(全永祥)·김구영(金龜泳) 등과 주동하여 인근 주민 수 백 명이 모아 독립 만세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헌병의 출동으로 제지당하였는데 이때 황해수는 적에게 끌려가면서도 이제는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쉬고 다시 독립운동을 계속하라고 격려하였다. 그 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어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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