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112
한자 李圭弘
이칭/별칭 원오(元五),오하(梧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연표보기 - 이규홍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1년 - 이규홍 중추원 의관 합격
활동 시기/일시 1914년 - 이규홍 대한 독립 의군부의 창립 계획 수립에 동참
활동 시기/일시 1917년 - 이규홍 오도산성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이규홍 경성에서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이규홍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8년 - 이규홍 대통령 표창 수상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이규홍 건국 포장 추서
출생지 이규홍 출생지 - 전라북도 익산시
묘소 이규홍 묘소 - 전라북도 익산시 석암동 관동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의병장

[정의]

일제 강점기 진안에서 활동한 의병.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오(元五), 호는 오하(梧下). 아버지는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을 지낸 이기영(李琪榮)이고 어머니는 인동 장씨(仁同 張氏)로 장상문(張相文)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규홍(李圭弘)[1881~1929]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1906년에 박이환(朴駬桓)문형모(文亨模)를 규합하고 4월 24일 종성리의 임병찬(林炳瓚)을 찾아가 최익현(崔益鉉)을 만나서 포부를 피력하였다. 며칠 뒤 다시 임병찬을 찾아 박이환문형모 의사도 덧붙이며 집지(執贄)의 예를 올린 뒤 스승을 삼고 거사(擧事)에 동참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규홍은 의병장으로서 집에 비축되어 있는 곡물과 약 500마지기 넘는 전토를 방매하였다. 자금이 마련됨으로써 박이환의 형인 박영식(朴永植)으로 하여금 총포와 화약을 구입하게 하고 병졸은 박이환, 문형모의 주선으로 전주 감영의 해산 병정 100여 명을 모집하고 각처에서 자원하여 온 의병 100여 명과 산포수(山砲手), 지사(志士) 50여 명이 규합되었다. 활동지는 진안, 장수, 용담 등지의 산간으로 옮겨 가면서 일본군과 싸웠다. 이때의 전과는 일본군 44명을 죽이고 아군의 전사는 7명이었다.

1924년 2월 8일 경성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경무청에 수감되어 4개월 동안 고문을 당하였다. 어깨가 절상되어 사경에 이르자 동년 5월 28일 보석으로 출감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오하일기(梧下日記)』가 있다. 이규홍박이환, 문형모와 함께 태인에서 최익현임병찬을 만나 의병에 동참할 것을 맹약하는 1906년 초부터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편성하여 활동한 뒤 의병을 해산하는 이듬해 4월까지 약 1년 4개월간에 걸친 기록이다.

[묘소]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 석암동 관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77년에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전북 의병사』하(전북 향토 문화 연구회, 1992)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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