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필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088
한자 宋弼用
이칭/별칭 윤직(允直)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송필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송필용 만세 운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송필용 신양리 제천봉에 의열단 설단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송필용 의열단 설치
몰년 시기/일시 1951년연표보기 - 송필용 사망
출생지 송필용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송필용 거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본관 은진(恩津)

[정의]

일제 강점기 진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윤직(允直), 호는 경헌(敬軒).

[활동 사항]

송필용(宋弼用)[1904~1951]은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서 태어났다. 사립 화동 학교[현 주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이덕응에게서 수학하였고, 재학중인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선두에 서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투옥되었다. 1923년 3월 1일 신양리 제천봉에 의열단을 설단하고 안중근, 윤봉길, 민영환, 이봉창 등 7인의 열사를 배향하여 조국의 광복을 기원했다. 그 후 화양 도원을 열어 후진 교육에 힘쓴 스승 이덕응의 뒤를 이어 20여 년 간 후진 교육에 헌신하였으며, 스승의 기일에 꼭 참석하는 등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남달랐다. 그러면서도 잠시 금산에 은거하고 있던 의병장 근재 이송과 긴밀히 연락하며 교분을 가졌으며 향리에서의 교우 관계도 구국 의지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과는 대면하지 않았다.

8·15 해방 이후인 1946년에는 의열단을 설치하고 송병선, 최익현, 민영환, 이준 등 4열사와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4명 의사의 애국 정신을 기리어 매년 8월 15일 향화를 잊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 때 인민군 분주소에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진안으로 호송 도중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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