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086
한자 金敎性
이칭/별칭 중경(重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0년연표보기 - 김교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5년 - 김교성 은거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김교성 정재 이석용의 창의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김교성 현현계 조직
몰년 시기/일시 1944년연표보기 - 김교성 사망
출생지 김교성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
묘소 김교성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
성격 의병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경력 현현계 조직

[정의]

근대 진안에서 활동한 학자.

[개설]

이석용의 창의에 가담하였고, 1924년에는 현현계(賢賢契)[면암 제자 모임]에 참여하였다. 후에 현현계를 회덕계(懷德契)로 바꾸고 고종의 위판을 마이산단으로 옮겼는데 이것이 이산묘의 기초가 되었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경(重敬), 호는 우당(愚堂). 조선 개국공신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김태희(金泰熙)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김교성(金敎性)[1880~1944]은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스승인 송병선이 자결하자 망국의 설움을 안고 두문불출하다가 1906년 정재(靜齋)이석용(李錫庸)의 창의에 가담하였다.

1907년 충훈부에서 참봉의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송병선·최익현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이기회와 함께 현현계(賢賢契)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1925년 현현계를 회덕계(懷德契)로 바꾸고 고종의 위판을 마이산단으로 옮겼다.

1926년에는 후산(厚山) 이도복(李道復)을 이산 정사로 모셔왔다. 김교성은 마령에서 한약업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 해 봄 순종이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산정사에 은거한 이도복을 찾아가 오상필과 함께 주필대 아래에 석단을 쌓고 순종의 죽음을 슬퍼하여 자규사를 지어 읊었다. 그 후 망국의 분함을 이기지 못해 송병선·최익현의 뒤를 따르려는 결심으로 독약을 마시고 자결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묘소]

묘는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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