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055
한자 吳道漢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7년연표보기 - 오도환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06년연표보기 - 오도환 사망
성격 학자
성별
본관 함양(咸陽)
대표 관직|경력 사마시 장원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학자.

[개설]

김종한이 찬한 「옥은공 오도한 묘갈명」에 의하면, 1884년 진사시에 장원하고부터는 다시는 진사[벼슬에 나아감]를 생각하지 않았다. 형제와 함께 경서를 탐독하고 후진에게 의로써 훈몽하니 가문이 화기가 있었다.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운서(雲瑞). 증조할아버지는 오명일(吳命一)이고 할아버지는 오수원(吳守源)이고 아버지는 동몽교관을 지낸 오성복(吳成福)이고 어머니는 천안 전씨이다.

[활동 사항]

오도한(吳道漢)[1827~1906]은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학문에 몰두하였다. 일찍부터 금곡(錦谷) 송래희(宋來熙)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사마시에 진사 장원 급제한 이후부터는 형제들과 경서를 강론하고 또한 노사 기정진과는 도의의 벗으로 후진에게 의로써 훈도하였다. 산수의 경관을 좋아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백운면 섬진강 상류에서 흐르는 물과 백운 송정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쌍계정(雙溪亭)을 창건하고 「쌍계정기(雙溪亭記)」를 지어 편액을 걸어놓고 바둑을 두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하면서 지내다 80세에 삶을 마쳤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는 「쌍계정기」가 남아 있다. 문집은 남아 있지 않다.

[묘소]

묘는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포중(包中) 평록(平簏)에 있으며 안동 김종한(金宗漢) 찬하고 윤용구가 쓴 비문이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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