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92
한자 李達孫
이칭/별칭 기원(基遠),유계(幽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98년 - 이달손 낙향
사당|배향지 진안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진안(鎭安)
대표 관직 안악 군수

[정의]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개설]

이산묘에 배향된 것은 후손들이 진안 지방에 세거하며, 이산묘 창건 당시부터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계]

본관은 진안(鎭安). 자는 기원(基遠), 호는 유계(幽溪). 직제학(直提學) 이교(李校)의 증손(曾孫)이고 참봉(參奉) 이계남(李繼南)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달손(李達孫)[?~?]은 진안군에 태어났다. 『대한 이산묘지』에 의하면 이달손은 ‘타고난 용모와 성품이 순수하고 아름다웠고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또한 어버이의 병환을 직접 간호하며 여러 차례 감응을 얻은 효자로, 한훤당 김굉필(金宏弼)과 알고 지냈다.

성종 때 효행(孝行)·문장(文章)·덕업(德業)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벼슬이 황해도 안악 군수(安岳郡守)에 이르러 많은 치적을 이루었다.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때 상소하여 사림(士林)을 구하려 하였으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연산군의 방탕이 날로 심해져 선성(先聖)의 위판(位版)을 고암(高菴)으로 옮기고 무당과 박수를 모아 태학(太學)에서 굿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상소를 올려 극간하였다. 이로 인해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붙잡혀 갇혔는데 대각(臺閣)에서 구원하여 겨우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두문불출하며 지내다 세상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충정공(忠貞公) 만암(晩菴) 이상진(李尙眞)이 지은 묘갈(墓碣)이 전해진다. 진안 이산묘 영모사(永慕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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