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78
한자 金赫章
이칭/별칭 봉주(奉周),야양재(也養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경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97년연표보기 - 김혁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62년 - 김혁장 농민의 봉기 대책을 상소함
활동 시기/일시 1866년 - 김혁장 척양문 작성
활동 시기/일시 1867년 - 김혁장 생원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888년연표보기 - 김혁장 사망
출생지 김혁장 출생지 - 전라북도 장수군 신기촌
거주|이주지 김혁장 거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금산(錦山)

[정의]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금산(錦山). 자는 봉주(奉周), 호는 야양재(也養齋). 금산군(錦山君) 김신(金侁)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김평(金平)이고 할아버지는 김상옥(金相沃)이고 아버지는 김성진(金性眞)이며, 장인은 조영완(趙榮琓)이다. 아들로는 김동현(金東鉉), 김필현(金弼鉉), 김규현(金奎鉉), 김정현(金正鉉) 등이 있으며, 사위로는 김관순(金琯淳), 이두환(李斗煥), 송석구(宋錫九) 등이 있다.

[활동 사항]

김혁장(金赫章)[1797~1882]은 장수군 신기촌(新基村)에서 태어났고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거주하였다. 천성이 순일(純一)하고 기골이 청수(淸秀)하였으며, 어버이를 섬기는 정성이 지극하였다. 학문에 전념하였지만 과거와는 인연이 없어 1867년(고종 4)에야 생원과에 합격하였다.

세도 정치가 한창이던 1862년(철종 13) 삼정의 문란에 항거하는 삼남 지방 백성들의 봉기가 확산되자, 이에 대한 대책을 3가지로 정리하여 조정에 올리기도 하였다. 1866년(고종 3) 강화도에 병인양요(丙寅洋擾)가 발생하자 척양문(斥洋文)을 지어 백성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써 나라의 체통을 세울 수 있다는 대의를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김혁장이 사망하자 각도의 유림들이 예조에 글을 올려 그를 추모하는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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