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촌영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844
한자 黃尨村影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삼로 30-5[백화리 90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44년연표보기 - 황방촌영정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4월 28일연표보기 - 황방촌영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황방촌영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장처 화산 서원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삼로 30-5[백화리 905]지도보기
성격 초상화
작가 미상
소유자 황언주
관리자 황언주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 있는 화산 서원에 소장된 방촌 황희의 초상화.

[개설]

화산 서원에 봉안되어 있는 방촌(厖村) 황희(黃喜)[1363~1452]의 초상화이다. 황희는 조선 전기의 재상으로 내외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조선 개국 초기의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힘쓴 인물이다. 황방촌영정은 경상북도 상주시 옥동 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1844년(헌종 10)에 옮겨 그린 것으로 엄숙하고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의 초상화는 선생이 62세 되던 해에 그린 것이다. 이를 옮겨 그린 그림이 5점 정도 있었으나 전란 중에 모두 소실되고, 노덕 서원과 파주 영당에 모사본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중 화산 서원의 초상화가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1987년 4월 28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황방촌영정은 1927년 화산 서원이 건립된 후 걸어 놓은 것으로 진채로 그려졌다. 홍여하[1621~1678]는 초상화를 보고 황희의 인품에 대해 “평소 집에 있을 때는 그저 온화하여 어린 종들이 몰려들어 수염을 잡아당기며 안아달라고 조르거나 먹을 것을 내라고 조르기를 마치 제 부모에게 하듯 해도 내버려두지만 관복 차림에 홀을 꽂고 묘당에 나서면 조정이 숙연하였다. 비유컨대, 용이 못 속에 숨어 있을 때에는 자라나 도마뱀 따위의 업신여김을 받지만 한번 변화하면 비바람과 벼락을 일으켜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과 같다.”라고 글을 썼다.

[형태 및 구성]

황방촌영정에서는 인물을 화면 가운데에서 약간 향우측에 치우치도록 배치하였다. 황희는 정면향을 하고 있나 모자의 배치나 기울기, 그리고 인물의 시선으로 볼 때 약간 화면의 좌측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녹색의 운문사로 된 관복을 입고 두 손을 소매자락 사이에 숨기고 약간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화가와의 대면이 어색하여 짓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옥으로 된 각대와 쌍학흉배, 오사모로 보아 그의 직위를 짐작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콧날과 눈 주위에 음영을 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관복에 주름을 표현하기 위해 밝은 옥색을 주름 선에 올리고 그 옆을 좀 더 진한 색으로 도채한 것으로 보아 근대기의 명암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옥색으로 옷주름 선 위를 칠한 것은 이 시기에 덧입혀진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크기는 가로 54㎝, 세로 80㎝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원본 이상으로 우아한 느낌을 주어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된 바 있다.

[특징]

화면을 전체적으로 압도하도록 상반신을 배치하였으나 인물이 화면의 향우측으로 약간 비켜 배치한 구도를 지니고 있다. 얼굴은 정면을 향하나 관모의 방향, 관모의 기울기, 황희의 시선 등이 약간 정면을 피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상북도 상주시 옥동 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것을 1844년에 옮겨 그린 것으로 모사본 제작이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었는가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된다. 또한 이 당시 안료의 성분이 어떠한 것인지, 바탕지로 사용한 섬유와 지류의 제작법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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