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751
한자 安靜洞-
이칭/별칭 운봉리 다래골 사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산 117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서지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안정동 절터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안정동 절터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산117 지도보기 일대
성격 절터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있는 절터.

[개설]

안정동 절터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안정동 마을 서쪽에 있는 절터로 인근의 정천면 갈용리에 위치한 천황사의 본래 자리라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터는 구하기 힘든 명당 터인데, 무주 사람 박헌갑이 절의 뒤에 묘를 쓰자 그 이튿날부터 절의 샘물이 끊어져 버리고 난데없이 쥐떼가 모여들어 난리를 쳤다고 한다. 이에 승려들이 묘소를 옮겨줄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박씨와 심한 마찰을 일으켰는데, 박씨가 승려 2명을 때려죽였다고 한다. 그 이후 천황사는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한다.

[변천]

안정동 절터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창건 시기 및 사찰의 운영 시기 등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다만 지표에서 수습되는 기와의 문양과 자기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천황사가 있는데 본래 안정동 절터에 있던 것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라 전하고 있다. 한편 운봉리에는 상양명 절터안정동 다래골에 2개의 절터가 있는데, 두 곳의 절터가 다 천황사 터였다고 전하고 있지만 둘 다 확실하지는 않다.

[위치]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에 자리하고 있다. 주천면 안정 마을 입구에서 서쪽으로 안정길을 따라 1㎞ 정도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측의 나무 사이로 갈라지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약 300m 정도 들어가면 가면 인삼밭 경작지가 나온다. 안정동 절터는 시멘트길이 끝나는 곳, 인삼밭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안정동 절터에 대한 발굴 조사는 전혀 이루어진 바 없다. 다만 1989년 전북 대학교 전라 문화 연구소와 진안군에 의해 발간된 『진안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 보고서』에는 운봉리 다래골 사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2007년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제작을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현황]

안정동 절터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안정동 마을 서쪽에 있는 절터로 운봉리 사지, 운봉리 다래골 사지라고도 한다. 안정동 절터는 인삼밭으로 경작되면서 형성된 대지의 일부에 해당되며, 범위는 약 5,000㎡ 정도로 보고되었다. 따라서 절터의 정확한 범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인삼밭과 산기슭의 경계 부위는 당시에 사찰의 뒷담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부분에 인삼밭 경작 시 나온 각종 기와 편 등을 모아 두었다. 절터 내에서는 지금도 기와, 백자, 토기 등이 다량으로 산포되어 있다. 산포된 유물은 기와 류가 가장 많으며, 문양은 집선문 류가 주를 이룬다. 시기는 기와의 문양과 제작 기법에서 본다면 조선 후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현재 절터로 추정되는 지역은 전답으로 이용되어 많은 부분이 황폐해져 있다. 다만 경작을 하는 과정에서 출토되는 많은 유물은 이곳이 건물터가 있었던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정식으로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건물터의 성격을 알 수는 없지만 부처막골이라 전하는 이름에서 이곳에 절터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서는 기와, 백자, 토기 등이 다량으로 산포되었는데 그 중 기와가 가장 많다. 기와의 문양은 집선문류가 주를 이루는데, 기와의 문양과 제작 기법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 중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안정동 절터의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에는 운영되다가 폐찰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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