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용리 갈두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740
한자 葛龍里葛頭遺蹟
이칭/별칭 갈머리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 8월 3일 - 갈용리 갈두 유적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3월 - 갈용리 갈두 유적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완료
소재지 갈용리 갈두 유적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 전주 박물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효자동 2가 900]
성격 선사 유적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에 있던 신석기 시대의 생활 유적.

[개설]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갈두 마을정자천 변에서 집 터, 적석 노지, 성격을 알 수 없는 구조물 등이 조사되어 전라북도 내륙의 동부 산악 지대에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 터가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변천]

갈용리 갈두 유적은 신석기 시대 생활 유적으로 토기에 시문된 문양을 중심으로 상대 편년이 가능하다. 1단계는 짧은 선 문양, 마름모 문양, 삼각 문양, 새날개 문양 등이 그릇 전체 또는 몸통부 상단에 시문되는 시기로, 기원전 4000년 후반에 해당된다. 이때에는 집터와 용도 미상의 구조물이 설치된다. 2단계는 점열 문양, 문살 문양 등이 몸통 상단부까지 시문되는 시기로, 기원전 3000년 전반에 해당된다. 이때 적석 노지가 축조된다. 3단계는 겹구연 토기와 짧은 선 문양, 가로 짧은 선 문양 등이 시문되는 시기로, 기원전 3000년 후반에 속한다. 2단계와 마찬가지로 적석 노지가 설치된다.

[위치]

갈용리 갈두 유적진안군 정천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95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약 5㎞ 가면 갈두리에 도착하게 되고, 갈두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을 따라서 용담호 쪽으로 약 200여 m 내려가면 유적이 존재하지만 현재는 용담호에 수몰되어 있다. 그러나 용담호에 수몰되기 전에는 갈용리 갈두 마을정자천 변에 위치하여 도로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갈용리 갈두 유적은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 유적 발굴 조사의 일환으로 조사되었다. 당초 농작물 재배 금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경작되던 하천변으로서, 경작을 못하도록 굴삭기로 깊은 구덩이를 파 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유적이 발견되었다. 당시 전북 대학교 박물관은 2000년 용담댐 3차 조사를 실시하던 중, 갈용리 일대에 굴삭기로 구덩이가 파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처음으로 유적을 찾게 되었다.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는 2000년 8월 3일~2001년 3월 호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수행하였으며, 신석기 시대 집터와 적석 노지 등에서 다량의 신석기 시대 토기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갈용리 갈두 유적과 유물은 우리나라 남부 지방 신석기 문화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섬진강과 남강 수계를 통하여 영남 서부 내륙과 남해안의 신석기 문화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금강 수계를 통해 남부 내륙 신석기 문화가 금강 중상류를 거쳐 중부 지방으로 전파될 수 있는 교량적 역할을 해준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황]

갈용리 정자천 하변에서 확인된 신석기 시대의 생활 터는 기원전 4000년 후반부터 기원전 3000년 후반까지 지속된 유적이다. 생활 터에서는 집터 3기, 적석 노지 53기, 그리고 성격을 알 수 없는 구조물 3기가 조사되었다.

집터는 평면 형태가 원형이며, 중앙에 노지가 설치되었다. 집터 내부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다.

적석 노지는 냇돌을 원형으로 깔아 불을 피운 시설로, 갈용리 2단계와 3단계에 집중적으로 축조되었다. 이로써 이 시기의 정자천 변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야영지였음을 알 수 있다.

진안 지역에서 확인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갈용리 갈두를 비롯하여 갈용리 농산 유적, 모정리 진그늘 유적, 모정리 여의곡 유적, 모정리 망덕 유적, 용평리 운암 유적, 삼락리 안자동 유적을 들 수 있다.

갈용리 갈두 유적은 현재 용담호에 수몰되어 볼 수 없지만 갈수기에는 지표면이 드러난다.

[의의와 평가]

갈용리 갈두 유적금강 최상류에까지 신석기 시대 문화가 파급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로서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문화와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진안은 금강섬진강의 발원지로서 문화 전달자의 역할을 갈용리 갈두 유적을 통해 확인시켜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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