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633
한자 鎭安道通里靑瓷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평안길 7-6[도통리 972-1]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윤성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3년 -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문화재 지정 일시 2019년 9월 2일연표보기 -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사적 제55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사적 재지정
소재지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중평안길 7-6[도통리 972-1] 일대지도보기
성격 가마터|청자 가마 유적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변천]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변천 과정은 파악되지 않는다. 선해무리굽, 중국식 해무리굽, 한국식 해무리굽의 청자편 등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청자 생산 가마터가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위치]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성수면 소재지에서 외궁 교차로를 지나 도통리 중평 마을 방향으로 약 2.2㎞ 가면 나온다. 도요지는 마을 내에 있는데 모든 민가 마당이나 담장 주변과 정자 주변 등지에 청자편과 갑발 들이 널려져 있다. 이곳은 외궁리 점촌 도요지와 500m 도통리 양지 도요지와는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1938년 일본인 노모리 켄[野守健]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1982년 최순우에 의해 다시 조사되었다. 이후 1992년도 「전북 지방 도요지의 연구」와 1997년도 『전북의 조선 시대 도요지』, 2007년 『문화 유적 분포 지도』, 2011년 「진안 지역 청자 요지의 연구」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다. 특히 2013년 11월부터는 진안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가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진행되고 있어, 한국 초기 청자 전개에 있어 새로운 학술 자료가 기대된다.

[현황]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내에 7개소의 청자 요지가 밀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마을 내 민가의 보수와 신·개축, 계단식 농경지의 조성, 도로의 조성 등으로 인해 가마 유적은 대부분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 따라서 유적의 명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유물은 마을 내 정자 주변에 집중적으로 산재해 있으며, 마을 내 담장과 민가 마당, 도로변에도 확인된다.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에서는 선해무리굽, 중국식 해무리굽, 한국식 해무리굽의 청자편이 채집되며, 기종은 완, 발, 접시 등이 확인된다. 요도구는 갑발, 갑발 받침, 도지미 등이 확인되는데 갑발의 형태는 발형, 원통형, 복발형 등 3가지 형태가 발견된다. 그 밖에 전축요의 부재인 벽돌도 확인된다. 2019년 9월 2일 사적 제5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도통리 양지 도요지, 외궁리 점촌 도요지와 더불어 한국 초기 청자 전개 과정에서 대표적인 도자 유적으로 손꼽힌다. 특히 2013년 11월부터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내륙 산간 지방으로의 초기 청자 전개 과정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성수면 도통리는 고려 초기 청자의 집단 생산 지역으로 남원, 임실, 전주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에 해당된다. 성수면 도통리 일대에 세운 강주소(剛朱所)의 치소 역시 청자 생산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지역 내에는 삼국 시대부터 유력한 토착 세력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고려 시대 청자 제작이 국가의 수취 체제하에 진행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 수요층 또한 이에 상응한 세력들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안군 성수면 일대에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이어진 강력한 지방 토착 세력들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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