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609
한자 三樂里勝金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승금 마을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조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5년 12월 26일 - 삼락리 승금 유적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5월 25일 - 삼락리 승금 유적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완료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 전주 박물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효자동 2가 900]
성격 유적
양식 고인돌|돌널무덤
크기(높이,길이,둘레) 165㎝[B-1호 돌널무덤 길이]|80㎝[B-1호 돌널무덤 너비]|50㎝[B-1호 돌널무덤 깊이]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승금 마을에 있던 조사된 청동기~삼국 시대 무덤 유적.

[개설]

삼락리 승금 유적은 1993년에 발간된 『진안 용담댐 건설 수몰 예정지 문화재 정밀 지표 조사 보고서』에는 보고되지 않았던 유적으로, 연장 조사에서 추가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 발견 당시 철거된 민가 잔해 속에서 고인돌의 덮개돌이 확인되어 확장 조사가 이루어졌고,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고인돌 6기와 삼국 시대 돌널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위치]

삼락리 승금 유적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락리 승금 마을에 있다. 승금 마을안천면사무소가 위치한 노성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3.5㎞가량 떨어져 있었다. 승금 마을의 앞으로는 안자천이라 불리는 작은 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데, 이 천은 안천면 노성리안자동을 지나 승금 마을의 서쪽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금강의 상류와 합류한다.

[형태]

삼락리 승금 유적승금 마을을 중심으로 남쪽에 A 지구, 북쪽에 B 지구, 서쪽에 C 지구로 나뉜다. A 지구는 북쪽에 자리한 마을 안쪽 시작된 계곡이 유적의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남쪽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B 지구는 마을 북쪽에 자리하고 있던 초등학교의 산의 경사면에 해당된다. 발굴 조사 당시 밭으로 개간되어 있었다. C 지구는 마을의 서쪽에 남북으로 뻗은 능선의 남쪽 말단부에 해당된다. 승금 유적은 공간적으로는 3개로 나뉘나 시기적으로는 2개로 나뉜다. 하나는 A 지구에서만 확인된 6기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고, 다른 하나는 B 지구와 C 지구에서 각 1기씩 조사된 삼국 시대 돌널무덤이다.

고인돌은 야산 말단부에 입지하고 있다. 하부 구조는 대부분 파괴되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고인돌은 6기 모두 덮개돌이 남아 있었으며 아래에 굄돌이 있는 지석식으로 파악된다. 1호 고인돌은 매장 주체부가 돌덧널로 추정되나 파괴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2호·3호·4호 고인돌은 덮개돌을 가지고 있으나 파괴 및 교란이 심하게 진행되었으며 정확한 매장 주체부도 확인할 수 없었다. 5호 고인돌은 고인돌로 명명되긴 하였으나 고인돌 덮개돌이 아닐 것으로 추정되었다. 6호 고인돌 역시 매우 심하게 파괴되어 덮개돌과 지석 이외에 매장 주체부와 같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 역시 극히 적은 편으로 1호 주변에서 민무늬 토기편이 소량 발견되었을 뿐이다.

삼국 시대 돌널무덤은 B 지구와 C 지구에서 각 1기씩 모두 2기가 확인되었다. B-1호 돌널무덤은 상부가 파괴되고 바닥으로부터 4단에서 5단만 남아 있었는데 남쪽 벽석의 쌓은 형태를 통해 횡구식으로 추정된다. 바닥에는 돌을 깔아 시상대를 마련하였다. 돌널 내부 규모는 길이 165㎝, 너비 80㎝, 깊이 50㎝이고 시상대의 높이는 25㎝ 정도 된다. 유물은 주로 북쪽에서 출토되었으며 받침 있는 긴 목 항아리·병 모양 토기·짧은 목 작은 항아리·굽다리 접시·가락바퀴 등 토기류가 9점 출토되었다. C-1호 돌널무덤은 밭 개간으로 상부는 대부분 유실되고 1단의 벽석이 남아있었다. 벽석은 모두 깬돌을 사용하였고, 바닥은 냇돌을 깔았다. 시상대는 북쪽 장벽에 붙여서 판석을 깔아 마련하였다. 유구의 유실이 심해 정확한 규모와 형식을 파악하기 어렵다. 출토 유물은 굽다리 접시·뚜껑·깊은 바리형 토기·소형 토기 등 5점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삼락리 승금 유적은 발굴 조사 후 용담댐 완공으로 인하여 수몰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락리 승금 유적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하부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출토 유물도 극소량으로 주변에서 조사된 안자동·수좌동·풍암 고인돌의 정연한 매장 주체와 적석 시설 및 다량의 출토 유물들과 비교된다. 이러한 차이가 지역성인지 시기적 차이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의 고인돌 사회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볼 수 있다.

삼국 시대 돌널무덤은 돌널의 형태와 출토 유물 등에서 금산 장대리 유적과 비슷하여 신라 후기에 속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승금 마을과 인접한 월계리 황산 마을월계리 고분 떼와 와정 마을의 와정 토성에서 주로 확인되는 가야와 백제계 유물들과의 선후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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