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포리 대구평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606
한자 月浦里大邱坪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 대구평 마을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5년 12월 26일 - 월포리 대구평 유적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5월 25일 - 월포리 대구평 유적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완료
성격 유적
양식 회곽묘
크기(높이,길이,둘레) 1m[높이]|9.2~10.3m[길이]|3.2m[매장부 깊이]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있던 조선 전기의 회곽묘.

[개설]

월포리 대구평 유적은 1995년 12월 26일부터 1996년 5월 25일까지 전북 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 유적 1차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그 결과 1기의 회곽묘가 확인되었다. 깊이가 비교적 깊고 바닥에 돌이 깔려 있으며 감실을 갖추고 있는 형태로 조선 초기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위치]

월포리 대구평 유적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 대구평 마을에 있다. 대구평 마을금강 상류의 지류가 급하게 곡류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유적은 대구평 마을 앞의 대덕산에서 흘러내리는 북사면을 이용해서 만든 경작지와 아직 개간되지 않는 산자락의 경계면에 자리하고 있다. 무덤의 남쪽은 경사가 급해지면서 대덕산으로 이어진다.

[형태]

월포리 대구평 유적에서 확인된 1기의 회곽묘는 길이 9.2m~10.3m, 높이 1m가량 크기의 봉분이 남아 있었고 남쪽 부분에는 이미 도굴된 흔적이 있었다. 무덤의 매장 주체부는 깊이가 320㎝로 매우 깊고, 네 벽과 뚜껑은 두꺼운 회로 만들어졌다. 회가 칠해진 아래 부분은 나무 뚜껑이 있으며, 바닥에는 작은 자갈을 깔았다. 묘광의 북벽에는 깊이 70㎝가량의 굴을 파내어 만든 감실이 마련되었으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비록 유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았으나 유구의 깊이가 매우 깊고, 바닥에 자갈을 깔았으며 바닥 측면에 감실이 마련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조선 초기에 조성된 무덤으로 추정된다.

[현황]

월포리 대구평 유적은 발굴 조사 후 용담댐 완공으로 인하여 수몰되었다.

[의의와 평가]

월포리 대구평 유적은 1기의 조선 시대 회곽묘가 조사되었으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정확한 조성 시기를 추정할 수 없다. 그러나 회곽묘의 깊이, 감실의 존재, 바닥의 자갈돌 등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무덤으로 추정되어 이 시기 묘제 연구에 참고가 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초기와 전기의 차이가 뭔가요? 정의와 다른 내용에는 혼용해서 사용하다보니 헷갈리네요
순서로 따지면 초기-전기-중기-후기-말기로 사용을 합니다.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과 관련하여 문맥상 오류가 없으므로 반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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