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372
한자 雲山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운산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7년 1월 1일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운산리에서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1.83㎢
가구수 212가구
인구[남/여] 391명[남자 189명, 여자 202명]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구운(九雲)·유산(乳山)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운산리라 하였다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말 진안군 상도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후사동·언건리·송대리·유산리·구운리·신흥리를 병합하여 상전면에 편입하였다. 1987년 1월 1일 상전면에서 진안읍으로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운산리부귀산운장산 자락을 등지고 있고 주변에 산골짜기들과 고개들이 발달해 있다. 전반적으로 서쪽과 북쪽은 높은 산으로 막혀 있고, 동쪽과 남쪽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 상전면 갈현리주평리, 서쪽으로 부귀면 두남리, 남쪽으로 군상리물곡리, 북쪽으로 정천면 월평리와 이웃한다.

부귀산운장산 자락에서 발원해 흐르는 물은 정곡리를 지나 송대 마을과 언건 마을에서 진안천과 합수해 용담호로 흘러 들어간다. 부귀산 줄기인 서북쪽 궁검 바우골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대접골·태밭골 물과 합수하여 마을을 관류하여 동쪽으로 흘러 진안천에 합류한다.

[현황]

운산리진안읍의 13개 법정리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11월 현재 면적은 11.83㎢이고, 인구는 212가구 391명[남자 189명, 여자 202명]이 살고 있다. 구운·신흥·유산·검북·송대·언건·외후사동·내후사동 등 8개 행정리와 구운들·피정이·유산이·검북이·송대·언건·외후사동·내후사동의 8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주요 경제 활동은 논농사와 밭농사이며, 주요 작물은 벼·인삼·고추 등이다. 국도 30호선이 동남쪽을 지나며, 진안읍 소재지와 갈현리를 연결한다. 지방도 795호선은 중심부를 남과 북으로 관통하며 진안읍 소재지와 월평리를 연결한다.

유물 유적으로 운산리내후사 마을에는 고려 시대 석탑으로 1971년에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운산리 삼층 석탑이 있다. 구운 마을과 유산 마을 사이 산 경사면 하단부에서 고래실들까지 넓고 광범위하게 유물 산포지가 존재하며, 상감 청자편, 격자문 회청색 경질 토기편, 적갈색 연질 토기편 등이 다양하게 수습되고 있다.

유산 마을 앞에는 유서 깊은 샘이 있고 주변에 2그루의 향나무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어느 집안에서 유봉에 묘를 썼는데 그 후로 샘물이 끊기는 일이 생기자 무덤을 파헤쳤다 한다. 유산 마을 북쪽 입구에는 ‘효열부 밀양 박씨 포장비’가 있다.

외후사동 입구에는 1916년에 세운 의관 ‘문기주 선덕비’와 전 참봉 ‘진공 사현 자선비’[1927년], ‘김광현 영세 불망비’[1877년], ‘이복신 영세 불망비’[1871년]가 있다. 내후사동에는 수령 330년, 높이 10m, 둘레 3.2m의 느티나무가 있고, 마을 입구 오른쪽 산날망에 운산리 삼층 석탑이 있다.

구운 마을은 약 1800년 전에 만들어진 마을로 쇠머리봉·대접골·까치명당·월랑아씨풀재 등 몇 개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신흥 마을은 피정이의 행정리명으로 구운과 유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피정이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마을 앞쪽에 기다랗게 뻗은 줄기를 칼바위라 하는데 이 안쪽에 백정이 살았다 한다. 어느 날 중이 지나다가 백정촌을 향하여 하대하는 말을 하다 백정들에게 혼쭐이 났다. 그 이후 다른 중이 백정들을 해코지할 요량으로 백정촌을 찾아 호감을 사면서 여러 달 묵으며 대우를 잘 받았다. 백정촌을 떠나면서 이에 보답하겠다며 칼바위날과 쇠머리봉을 자르면 백정을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라 하였다. 시키는 대로 두 맥을 끊은 후 백정촌이 망했고, 그래서 아랫마을로 피가 흘러가 피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검북 마을은 부귀산 줄기의 골짜기 사이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사이에는 지방도 795호선국도 30호선을 연결한 군도가 지나간다. 검북 마을 앞에는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일제 강점기까지 마을의 액막이로 활용되었다. 나무에 짐대를 세우고 짐대 위에는 3마리의 오리를 동북쪽을 향하도록 올려놓았다 한다. 언건 마을은 서쪽 후사동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진안천과 합수되는 지점 충적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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