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7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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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집필자 | 유호석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사적(事蹟)을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등에 글을 새겨 세워 놓은 것.
[개설]
비는 재료에 따라 석비(石碑)·목비(木碑)·철비(鐵碑) 등으로 분류되지만, 현존하는 기념물 형태의 비는 거의 모두 석비이다. 석비는 형태에 따라 위가 네모난 형태의 비(碑)와 위가 둥근 형태의 갈(碣)로 나눌 수 있으나 총칭하여 비갈(碑碣)이라고 하며, 내용에 따라 탑비(塔碑)·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사적비(事蹟碑)·송덕비(頌德碑)·유허비(遺墟碑)·기공비(紀功碑)·정려비(旌閭碑) 등으로 분류된다. 대체로 사건이 일어난 당시나 그와 가까운 시기에 건립되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며, 역사학·문자학·서예 등 여러 분야에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
진안 지방에는 강창오 현비, 김영덕 순의비, 김용섭 기공비, 김정균 불망비, 김해 김씨 열녀비, 대불 초등학교 비석 떼, 두곡 비석 떼, 유은장구 지소, 만육 최양 선생 유허비, 먹고개 비석 떼, 백남호 불망비, 백세 공명기, 삼우동비, 서흥 김공 기적비, 시동 비석 떼, 신연 비석 떼, 십일 거사 기념비, 안자동 비석 떼, 안천 면사무소 앞 비석 떼, 우화정 비석 떼, 운암 비석 떼, 윤치호 시혜비, 윤치호 흥학비, 융희 황제 추모비, 장기호 불망비, 전참봉 기적비, 정병율 공덕비, 진등 비석 떼, 창촌 비석 떼, 태고정 비석 떼, 현감 이익응 선정비, 현감 이익응 영세 불망비, 현감 이중익 불망비, 현감 정기춘 불망비 등이 현존한다.
[송덕비]
송덕비는 선정비(善政碑) 또는 영세 불망비(永世不忘碑), 공덕 불망비(功德不忘碑), 유애비(遺愛碑) 등으로도 부른다. 흔히 지방 수령이 재직 중에 은혜와 교화를 끼친 것을 칭송하여 그 고을 백성들이 세우는 것이 상례이지만, 수령이 백성을 위협하거나 자신의 재물을 들여 억지로 세운 경우도 있었다.
진안 지방에서는 조선 후기에 용담 현령 또는 진안 현감을 지낸 수령들의 송덕비가 대부분으로 진안 지역 곳곳에 현존하고 있다. 남계훈 영세 불망비, 이민항 영세 불망비, 유원규 영세 불망비, 이광덕 영세 불망비, 이복신 영세 불망비, 이익응 영세 불망비, 이중익 영세 불망비, 임정수 영세 불망비, 정기춘 휼민 불망비, 조병섭 영세 불망비, 홍원섭 영세 불망비, 서상정 영세 불망비, 민달용 영세 불망비, 정철모 선정비, 임희진 영세 불망비, 신태동 휼민 선정비, 윤추 선정비, 이승소 청백 선정비, 정한규 청덕 애민 선정비, 홍원섭 방폐 선정비 등이 있다.
[유허비]
유허비는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길이 후세에 알리거나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 진안 지역에는 만육 최양 선생 유허비, 영계사 유허비, 신영구 유허비, 양하룡 유허비, 정상호 유허비 등이 전하고 있다. 이 중 만육 최양 선생 유허비는 백운면 반송리의 구남각 안에 세워져 있는데, 고려 말의 충신으로 이름이 높은 최양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후손들과 인근의 주민들이 1871년에 세운 것이다. 한편 마령면 강정리 강정 마을의 영계사 유허비는 1868년에 철폐되었던 영계사의 사적을 전하기 위하여 1870년에 유림들이 세운 것이다.
[효자 열녀비(孝子烈女碑)]
효자와 효녀 및 효부, 그리고 열녀 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효자 열녀비는 진안 지역 곳곳에 세워져 있다. 조선조 고종대 이후의 것들이 대부분으로,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 세워진 것들도 많다.
김상현 정려비(金尙鉉 旌閭碑)는 진안읍 반월리 원반월 마을 뒤쪽에 있다. 김상현은 부친이 늙어 병이 들자 매일 정성을 다하여 약시중을 들었으며, 돌아가신 후에도 3년 동안 여묘 살이를 하였다. 1868년 정려가 내려졌으며, 1871년에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정려비를 세웠다.
진안 지역의 효자비와 열녀비로는 이밖에도 김학배·종관·봉배 정려비, 박리풍 정려비, 분성 김씨 정려비, 성석태·필원 효자문, 손동현 정려비, 수원 백공 효려, 신의련 효자각, 오성복·오빈 정려각, 이난향비, 장향풍 효자문, 정재효 정려비, 황민찬 정려비 등이 있다.
[사적비]
어떤 사건이나 사업 또는 인물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사적비는, 흔히 기적비(紀蹟碑), 기공비, 기념비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진안 지역에는 삼천 서원 묘정비(三川書院 廟廷碑), 대한 광복 기념비,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 결성지비, 대한 의백비, 윤치호 흥학비, 의사 돈암 오기열 기적비, 전영상 항일 독립 운동 기적비 등이 전하고 있다.
삼천 서원 묘정비는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 망향의 동산 안에 있는데, 삼천 서원의 건립 경위와 제향 인물에 대해 기술한 비로 1732년(영조 8)에 세워졌다.
대한 광복 기념비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경내의 비각에 있는데, 1956년에 대한민국의 광복과 정부 수립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대한 의백비는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먹고개 큰길가에 있는 충의비로, 6·25 전쟁 당시 빨치산들로부터 고향을 지키다가 산화한 33위의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진안 군민의 성금을 모아 세운 것이다.
전영상 항일 독립 운동 기적비는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오동실 어귀에 있는데, 1919년의 3·1 만세 운동 때 오기열, 김귀영 등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크게 부르짖다가 왜적에게 붙잡혀 수년 동안 복역하였고, 이후 항일 운동에 투신한 전영상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 진안군에서 건립하였다.
[의의]
진안 지역의 석비 가운데 상당수는 용담 군수나 진안 현감을 지낸 수령들의 치적을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송덕비로 그 대부분이 19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송덕비 못지않게 많은 것이 효자비와 열녀비로 송덕비와 마찬가지로 조선 말에 세워진 것들이 적지 않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용담댐 건설로 수몰의 위기에 놓이게 되어 망향의 동산 등 다른 곳으로 이건되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진안 지역의 독특한 지역사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의병 활동 및 항일 투쟁과 관련한 기념비는 해방 이후 진안 지역 곳곳에 세워졌는데, 근현대에 들어와 이곳에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선현들의 땀과 피가 적지 않게 흘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사찰 관련 비석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