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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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19세기 중엽부터 조선 사회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민중 세력의 힘이 성숙됨과 동시에 일본과 서구 열강 세력의 침투 및 일제 강점기에 직면하였다. 진안 지역은 이 시기 동학 농민 운동 준비 단계에서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의병의 중심지였다. 1895년(고종 32) 5월에 반포된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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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자산리와 상전면 월포리에 걸쳐 있는 산. 고산은 진안군 동향면 자산리와 상전면 월포리의 경계에 있는 876m의 산으로, 상전면 쪽에서는 ‘대덕산’이라고도 부른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51′, 동경 127° 32′에 위치한다. 과거에 고산에 사찰이 있었는데 멀리서도 이 절의 북[鼓]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북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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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렁들을 끼고 이뤄졌으므로 한자로 ‘구룡’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진안군 정천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 다시 상전면으로 편입되었다. 용담댐 건설로 모든 마을이 수몰되었고, 금당 마을과 세동 마을은 산기슭에 새로 조성되었다. 고산 줄기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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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을 경유하여 황해로 흘러가는 하천.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897m]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흘러가는 강으로 우리나라 4대 하천의 하나이다. 유역 면적이 9,885㎢, 유로 연장이 401㎞로 남한에서는 낙동강과 한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2001년에 용담 다목적댐이 건설됨으로써 진안에서의 금강 유역이 더욱 넓어졌다. 금강으로 유입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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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지역에서 농민이 생활 조건이나 사회적 환경의 개선을 위해 전개한 사회 운동. 진안 지역 농민 운동의 효시는 일제 강점기의 소작 쟁의라고 할 수 있다. 광복 이후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농민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였다.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농민층을 전국적인 행정 체계에 흡수시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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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 22첩 중 전라북도 진안군 지역 고지도. 『대동여지도』 「진안·용담현」 지도는 축척을 명시한 약 1:160,000 정도의 고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 간격 22층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층을 1첩으로 만들고, 22첩의 지도를 상하로 연결하여 전국 지도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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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니는 비교적 넓은 길. 진안군을 통과하는 도로에는 고속 도로 1개 노선, 국도 3개 노선, 국가 지원 지방도 2개 노선, 지방도 7개 노선, 군도 21개 노선, 면도 28개 노선, 리도 28개 노선, 농도 28개 노선이 있다. 전라북도 동부 산악권과 전주권에 인접한 진안읍은 전주에서 호남 정맥을 넘어 내륙에 이르는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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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진안 출신이거나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일제에 의한 강압적인 개항과 국권 침탈에 대항하여 국권 회복 운동으로서 독립운동이 줄기차게 전개되었다. 특히 호남 지역은 일제에 저항하는 무장 의병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진안 또한 1905년 이래 호남 의병의 결성과 저항의 중심지로 활약하였고, 3·1 운동에도 주도적으로 만세 운동이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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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진안군의 동부에 위치하는 면으로 서북쪽으로는 안천면, 서쪽으로는 상전면, 동북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동쪽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남쪽으로는 장수군 천천면과 접한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동향면에 구리가 나는 동향소(銅鄕所)가 있었기 때문에 동향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향소는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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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박수현(朴秀賢)을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우리나라의 모든 박씨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이다. 이중 밀양 박씨는 박혁거세의 30세손인 박언침(朴彦忱)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박언침은 신라 제 54대 경명왕의 맏아들로 경명왕이 여덟 왕자를 각기 분봉할 때 밀성 대군(密城大君)에 봉해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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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부처님을 교조로 하여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384년(침류왕 원년)이고 이후로 백제는 성왕 때에 불교의 전성기가 이루어진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전라북도의 사찰은 515년(무령왕 15)에 세워진 귀정사(歸政寺)이고 그 다음이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상월리에 있는 신흥사(新興寺)로 529년(성왕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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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와 상전면 구룡리를 연결하는 고개. 불로치령의 높이는 403m이며, 과거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서 안천 시장과 안천 중학교로 다녔던 길이었으나 현재 거의 묵어가는 상태이다. 터널 공사를 하면서 도로와 만나는 부근은 옛길의 흔적이 일부 없어졌다. 터널 위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약간 묵어가고 있지만 길의 형태를 분명하게 간직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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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상전면은 진안군의 중앙에 위치한다. 서북쪽으로는 정천면, 동북쪽으로는 안천면, 동쪽으로는 안천면, 남쪽으로는 진안읍과 접한다. 상전면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부터 있던 상도면(上道面)과 탄전면(呑田面)을 일제 강점기에 통합하면서 두 면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상전면은 본래 진안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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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안읍 쪽에서 볼 때 진안천의 동쪽이라 해서 대일리(垈一里)를 수동리라고도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수동리로 명명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 진안군 탄전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산정리·대일리·내송리(內松里)·외송리(外松里)를 병합하면서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용담댐으로 대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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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자천이 원장 마을 앞을 흐를 때는 수성천이라 하였는데, 때문에 마을을 수천동 또는 수동이라고도 불렀다. 여기에서 수천리라는 이름이 나왔다. 조선 말 용담군 군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원장리를 병합하여 진안군 용담면에 편입되었다. 원장·하거·송림 등의 마을이 속하였다. 용담댐 건설로 수천리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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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을 통폐합할 때 신지동과 괴정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신괴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 용담군 이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지리·괴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괴리라고 하여 안천면에 편입하였다. 고산의 한 갈래가 동진하여 싸리재·갈티재에 이르는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동향면 자산리와 접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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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노성리·백화리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용담호로 흘러드는 하천. 안자천은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신괴리·노성리·백화리 등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삼락리 안자동 마을 앞에서 합류한 다음에 북쪽으로 흘러 금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었다. 용담댐 건설로 안천면의 농경지가 상당 부분 수몰되면서 안자천의 하류 또한 수몰되어 그 상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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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안천면은 진안군의 북동부에 위치한다. 북서쪽은 용담면, 북동쪽은 무주군 부남면, 남쪽은 상전면·동향면과 접한다. 안천면의 지명은 안천면을 흐르는 안자천(顔子川)과 관련이 있다. 안천면은 본래 용담현의 지역으로서 북면(北面)이라 했는데, 뒤에 일북면(一北面), 이북면(二北面)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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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용담 전투는 상조림장 전투·진안 전투로 이어지는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이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의 봉기 이후 진안 지역에서는 11월부터 동학 농민군과 관군·일본군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본래 용담현은 작은 고을로 1894년에 동학 농민군이 봉기한 이후 동학 농민군에게 점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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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포리 앞을 흐르는 금강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졌다. 조선 말 진안군 탄전면 지역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쟁토리(爭土理)·대구평(大丘平)·양지리(陽地里)·금단리(琴丹里)·항동(項洞)·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하고 월포리라 하여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동쪽 고산의 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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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에서 활동한 의병. 1907년 정미 7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그 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한국군마저 강제로 해산되었다. 유지명(柳志明)[1881~1909] 은 일본의 내정 간섭을 더 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하였다. 1907년 9월 초순경부터 스스로 창의 대장 또는 삼남 의병 대장이라 칭하고, 삼남 의병 대장의 인장이 찍힌 의병 소모 격문 1부와 의병 계칙(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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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개항기의 의병 운동은 크게 제1차 의병 전쟁[1895~1896년]과 제2차 의병 전쟁[1905~1910년]으로 나눌 수 있다. 진안 지역에서 제1차 의병의 활동 기록은 없고 제2차 의병에 이석용을 비롯하여 문태수·유지명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정미조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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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의 아름다운 경치들을 읊은 이도복(李道復)의 창작 가사. 「이산구곡가(駬山九曲歌)」는 후산(厚山) 이도복(李道復)이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이산 정사를 낙성한 후에 이산 정사에서 주자의 「무이구곡가」, 고산의 「고산구곡가」를 전범으로 하여 진안 마이산을 둘러싼 구곡 팔경의 아름다운 승경을 음미하여 읊은 창작 가사이다. 후산(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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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산리(紫山里)는 용담군 이동면 지역의 자하리(紫霞里)와 노산리(蘆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동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자하리·송학리(松鶴里)·대평리(大坪里)의 일부와 일동면 노산리를 병합하여 자산리를 만들고 진안군 동향면에 편입하였다. 서쪽은 고산 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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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흥선 대원군이 주도 하여 편찬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고지도. 18세기 조선 사회는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농업 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졌으며,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실학은 물론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었다. 그러나 19세기가 되면서 세도 정치와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정치는 물론 민생까지도 혼란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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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정성일(丁成一)[?~1909]은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초순경에 창의 기병한 유지명의 삼남 의병대에 가담하여 약 2년 동안 용담, 고산, 금산, 은진 등지를 무대로 의병 활동을 하였다. 특히 1907년 의진 30여 명이 심상의·노원섭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총검을 휴대하고 금산읍을 습격하였을 때 선두에서 분전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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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안천면 삼락리와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에 걸쳐 있는 산. 지장산은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와 안천면 삼락리,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의 경계에 위치한 773m의 산이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56′, 동경 127° 33′이다. 산의 형세가 활짝 핀 연꽃이 장막을 친 듯하고, 은은한 모양의 형상은 보살의 모습과 같고,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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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관군의 전투. 1894년 12월 10일 농산읍(農山邑)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한 동학 농민군이 진안 방향으로 퇴각하자 백목성태랑(白木誠太郞) 중위가 지휘하는 일본군이 이를 포착하고 진안으로 진격하였다. 일본군이 고산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배후에 있는 진안의 동학 농민군을 사전에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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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전라도 진안현의 통치를 담당한 지방관. 현감이란 수령(守令)으로 총칭된 지방관의 하나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현의 규모에 관계없이 지방관은 모두 현령(縣令)이라 불렀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 이르러 큰 현에는 영(令)이, 작은 현에는 7품의 감무(監務)를 두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다가 모두 현감으로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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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진안군은 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으로 남동쪽으로 전라북도 장수군, 북동쪽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서쪽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남서쪽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북쪽으로 충청남도 금산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수리적(數理的) 위치는 동경 126°16′[동향면 학선리]~127°38′[성수면 중길리], 북위 35°31′[백운면 신암리]~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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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와 진안군 동향면 성산리에 걸쳐 있는 산. 천반산은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와 동향면 성산리 경계에 있는 647m의 산이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49′, 동경 127° 32′에 있다.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겼고, 조선 시대 정여립(鄭汝立)[1546~1589]이 은신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향면의 동향 8경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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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진안 지역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한 곳은 충청남도 금산과 인접한 용담 지역이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초기부터 충청도 신자들이 이주하여 살거나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는데, 이들 중에서 순교자가 나오기도 하였다. 기록상으로 가장 먼저 용담에서 생활한 천주교 신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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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고조선과 중국 연의 무력 충돌로 고조선 유이민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기존의 고인돌 사회는 급격히 해체되었고, 새로운 질서의 재편 속에서 마한 등 삼한 정치체가 형성되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철기가 새롭게 출현했고, 청동기 제작 기술도 크게 발전하면서 우수한 청동 제품이 급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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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산업 구조의 복잡화와 환경 오염으로 인해 인체가 받는 스트레스가 가증되면서 아토피 피부염과 함께 여러 알레르기 질환의 유병률이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환경에 의한 알레르기성 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어 알레르기 질환을 체계적으로 관리, 예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하였으며, 1995년 유럽을 중심으로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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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송림 마을에 거주하는 양재호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송림 마을 양재호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는 백운면 평장리 송림 마을 어귀에 세워진 ‘남원 양씨 2효 1열비’[1892]의 주인공인 양원하, 양명수, 의성 정씨와 관련된 것으로 호구 단자, 혼서지류, 상서 등이다. 호구 단자는 사인이 관에 제출하는 것으로 4조와 부인, 그리고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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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지표수가 모여 일정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곳. 전라북도 진안군과 관련된 수계로는 금강과 섬진강 수계(水系)가 있다. 섬진강 수계는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관통한 뒤 남해 광양만으로 유입한다. 지류로 요천(蓼川)과 보성강(寶城江)을 비롯해 여러 하천들이 섬진강에 합류한다.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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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 전투는 1592년 7월 8일을 전후로 하여 전라도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고개인 웅치에서 전주 부성을 공격하고자 하는 왜군을 호남 지역의 관군과 의병이 사투를 전개하여 왜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안덕원까지 진출하였던 왜군을 격퇴하여 호남을 지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전투이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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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를 연결하는 고개. 황새목재는 과거 진안 지역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넘었던 길이다. 진안 지역에서 손실재나 마구실재를 지나 부귀면~하궁항~황새목재~고산을 거쳐 서울로 가게 되었다. 황새목재는 『비변사 호남 지도』에 학항치(鶴項峙)로 기재되어 있다. 황새목처럼 길어서 명명되었다고 전한다. 진안 지역에는 황새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