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에 있는 현충 시설. 충혼탑 [ 부귀면 ] 은 한국 전쟁 당시 진안 지역에서 북한군으로부터 주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조직된 주민 자치대 및 의용 경찰 전투대 등 호국 영령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부귀면 충혼탑 건립 추진 위원회 에서 2002년 9월 30일에 건립하였...
...당을 신교육의 전당으로 바꾸고 사립 보통학교 인가를 받아 수업하였다. 1922년 다시 공립 학교로 인가를 받아 토지 710평을 학교 대지로 희사하고, 5,000원의 희사금을 받아 현 마령 초등학교 의 위치에 교사(校舍) 2동을 신축하여 교육하였다. 이 학교는 마령면 , 백운면 , 성수면 , 부귀면 등 지역에서 신교육 시행의 효시가 되었다.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에 있는 칠성대 입구 암벽에 새긴 각석(刻石). 1895년 남학 운동 을 주도한 남학 교주 및 교도 8명이 순교한 이른바 을미 횡액 이후 남학 교도들이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운장산 계곡 에 숨어들어와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 이것이 칠성대 인데, 칠성대 옆 바위에는 ‘칠성...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칠성대 입구 암벽에 새긴 각석(刻石). 1895년 을미 횡액 이후 남학 의 교도들이 칠성대 에 숨어들어와 제단을 쌓고...)'이란 산을 지키는 신장(神將)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8부 능선 지점 칠성대 입구 암벽에 새겨...
...은 한국 전쟁 참전 결사대 및 9·28 수복 동지회 에서 한국 전쟁 당시 희생되었던 이 지역 출신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1950년 7월 27일에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에 지역 청년 6명이 모여 대한 비밀 결사대 를 조직한 후 3차례에 걸쳐 조직을 확대하였다. 이들은 대장 문훈모 를 중심으로 진안 지역 일대를 비롯해 무...
...찰이 퇴각하기 직전 예비 검속자 30여 명을 백운면 신암리 에서 처형한 사실도 알려져 있다. 1950년 10월에는 인민 위원회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양재춘 등 5명의 부귀면 정곡리 주민들이 국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들은 장승 지서 를 거쳐 진안 경찰서 로 이송된 후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수백 명과 함께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
...교 가 진안면 에 설립되었다. 이후 마령면 [1918년]· 정천면 [1922년]· 주천면 [1923년]· 안천면 [1925년]· 백운면 [1927년]· 부귀면 [1928년]· 동향면 [1930년] 등에도 각각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고, 이외에도 부녀자를 위한 야학이 개설되었다. 진안읍 의 장날이었던 1919...
... 정부의 교도대와 함께 용담 지역으로 출진하였다. 이들은 곧바로 정천(程川) 으로 진격하여 동학 농민군과 교전하였다. 11월 13일 밤에 동학 농민군은 현재의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에 있는 노래재[歌峙] 에서 유숙한 후 다음 날 노래재 를 넘어 상조림 아래 들판에 도착했다.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을 과소평가하였으나, 일본군이 갖...
...는 진안면 구룡리 출신의 전금생 을 임명하였다. 인민 위원회는 7~9월 사이에 부귀면 황금리 · 궁항리 등 운장산 일대에서 우익 세력에 대한 탄압과 처형을 자행했...우익 인사 38명을 진안읍 군하리 강경골재 에서 처형하였고 후퇴하던 중에도 부귀면 궁항리 에서 많은 주민을 학살하였다. 진안 지역에 남아 있던 우익...
...자신의 외가를 거점으로 운장산 에 들어갔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흩어졌던 보라매 구국대 는 이 사실을 알고 운장산 의 문훈모 와 합류하여 총 17명이 7월 27일 부귀면 수항리 손시골 에서 생사를 초월하여 북한군에 대항하고 싸우기로 맹세하고 대한 비밀 결사대 를 조직하여 문훈모 를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대한 비밀 결사대 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