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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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七星臺-刻石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용엽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 「칠성대」 각석 전북 역사 문화 학회에서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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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칠성대 입구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
성격 | 유형 유산|각석 |
관련 인물 | 김용배(金庸培) 등 남학 교도 |
면적 | 30㎝[높이]|70㎝[너비]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에 있는 칠성대 입구 암벽에 새긴 각석(刻石).
[개설]
1895년 남학 운동을 주도한 남학 교주 및 교도 8명이 순교한 이른바 을미 횡액 이후 남학 교도들이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 운장산 계곡에 숨어들어와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 이것이 칠성대인데, 칠성대 옆 바위에는 ‘칠성대(七星臺)’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 있다.
[건립 경위]
남학의 5대 교주 김용배(金庸培)는 을미 횡액 이후 마이산 정명암[현재 은수사]에 광제회를 열어 설법하고 운장산, 마이산 등 명산에 제단을 설치하여 기도에 주력하였다. 기도의 대상은 북두칠성과 산왕님[산왕불이라 함]을 주로 하였다고 한다. 칠성대는 이러한 종교 유적으로서 「칠성대」 각석은 북두칠성을 모시고 기도를 드리기 때문에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방곡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8부 능성 지점 칠성대의 수직의 암벽에 새겨져 있다.
[형태]
높이 30㎝, 너비 70㎝ 크기의 암각자(巖刻字)로 화강암 바위의 평평한 표면에 새겼다. 자획 폭 4㎝에 이르는 굵직한 글씨로 서체는 육조풍의 해서이다. 수준 높은 전문가의 글씨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칠성대의 대표적인 암각자로, 2009년 전북 역사 문화 학회 조사팀이 처음으로 찾아 탁본하고 발표하여 학계에 알려졌다. 이 각자는 남학과 관련되는 유적으로 연구가 필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