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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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19세기 중엽부터 조선 사회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민중 세력의 힘이 성숙됨과 동시에 일본과 서구 열강 세력의 침투 및 일제 강점기에 직면하였다. 진안 지역은 이 시기 동학 농민 운동 준비 단계에서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의병의 중심지였다. 1895년(고종 32) 5월에 반포된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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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라북도 진안군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무주군과 전라북도 장수군 및 충청남도 금산군을 아우르는 진안고원은 높이 300m 내외의 전형적인 고원 지대로 ‘호남의 지붕’이라고 불리면서 선사 시대 이래로 줄곧 교통의 중심지였다. 진안고원 일대에서는 금강을 중심으로 만경강·동진강·섬진강·남강·황강 유역을 하나로 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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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진안 지방은 진안현(鎭安縣)·마령현(馬靈縣)·청거현(淸渠縣) 등 세 고을이 전주 계수관 관할 아래 전주와 진례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고려 말에 진안에 감무가 파견되어 마령을 겸하였으며, 청거현은 충선왕 때 용담현(龍潭縣)으로 개칭되어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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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옛 지도. 진안 지역을 그린 고지도는 조선 시대에 전국도와 도별도가 제작되면서 만들어졌다. 전국도는 조선 전국을 그린 지도이다. 비교적 정확하게 제작된 것으로는 『동여도』·『여지도』 등이 있다. 이 지도들은 휴대의 편의를 위하여 책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지방도는 도별 혹은 읍별로 지도를 정리한 것이다. 하나의 군현을 대상으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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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 『광여도(廣輿圖)』 제3책 호남도(湖南圖) 중 일부인 진안현 부분. 『광여도(廣輿圖)』는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집으로, 종래 전국과 도별의 수준에서 제작되던 지도가 18세기 이후 고을 단위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광여도는 당시 회화식 군현 지도의 대표적인 지도인 『해동지도(海東地圖)』와 유사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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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하천이나 철도, 도로 등과 같은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교량은 근대 토목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보통 돌로 놓은 징검다리를 이용하거나 섶다리를 놓아 사용하였지만, 홍수기에는 모두 유실되기 일쑤였으므로 이후에는 다시 가설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1912년대에 전국에 신작로가 개설되기 시작했는데 자재 부족으로 대다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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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의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수상 교통·항공 교통으로 나누어지고, 육상 교통은 다시 도로 교통·자동차 교통·철도 교통 등으로 나누어진다. 교통의 발달은 정치 중심지를 핵으로 하여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과 지세의 복잡성은 교통로 발달을 저해하였고, 교통로의 미발달은 지역 간 문화적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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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67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난진아현(難珍阿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든 이름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의 지명이 난진아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에서 벽계군(壁谿郡)[지금의 장계면] 소속의 현으로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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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원노촌에 거주하는 신용권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원노촌에 거주하는 거창 신씨 신용권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로서 원노촌의 거창 신씨 미계 신의련의 사당 건립을 추천하는 상서류이다. 원노촌은 대대로 거창 신씨의 세거지였는데, 임진왜란 당시 신의련의 효행은 일본인 왜장을 감동시켰다. 이에 왜장은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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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안현의 남쪽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단령역은 전주에서 장수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원단양 마을로 추정된다. 단령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진안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산 제원도 찰방(錦山濟原道察訪)의 속역으로 역리 19명, 노 22명, 비 4명, 말 5필이 있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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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 22첩 중 전라북도 진안군 지역 고지도. 『대동여지도』 「진안·용담현」 지도는 축척을 명시한 약 1:160,000 정도의 고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 간격 22층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층을 1첩으로 만들고, 22첩의 지도를 상하로 연결하여 전국 지도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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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니는 비교적 넓은 길. 진안군을 통과하는 도로에는 고속 도로 1개 노선, 국도 3개 노선, 국가 지원 지방도 2개 노선, 지방도 7개 노선, 군도 21개 노선, 면도 28개 노선, 리도 28개 노선, 농도 28개 노선이 있다. 전라북도 동부 산악권과 전주권에 인접한 진안읍은 전주에서 호남 정맥을 넘어 내륙에 이르는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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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진안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북으로는 부귀면·진안읍, 동남으로는 백운면, 서남으로는 성수면과 접하고 있다. 고려 때부터 마령현이라고 불렸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안으로 읍을 옮기고 과거의 이름을 따라 마령면이라 불렀다. 진안의 상징인 마이영봉(馬耳靈峯)은 마령면 동촌리가 원줄기라고 볼 수 있다. ‘마이(馬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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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412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마령현(馬靈縣)은 마돌현(馬突縣)의 개칭된 이름이다. ‘마’는 크다 혹은 높다는 뜻이다. 이때의 ‘마’는 ‘머리’를 뜻하여 ‘마리’·‘모리’·‘모래’라고도 하며 줄여서 ‘말’·‘몰’이 된다. ‘돌’은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는 마돌을 마진(馬珍)·마등량(馬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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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은수사에 있는 제사 유적. 마이산은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까지 소사(小祀)의 대상으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서다산(西多山)이 백해군(伯海郡) 난지가현(難知可縣)에 있다고 했으며, 『고려사』에서도 진안현의 마령에 “마이산이 있는데 신라에서는 서다산이라 불렀으며 소사에 실었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마이산의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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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안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백춘(伯春), 호는 태천(苔泉). 시호는 경정(景靖). 증조할아버지는 첨정(僉正) 민규(閔珪)이고, 할아버지는 장원(掌苑) 민종윤(閔宗胤)이고, 아버지는 부정(副正) 민사권(閔思權)이고 어머니는 노인(盧禋)의 딸이며, 부인은 감찰(監察) 정희린(鄭姬隣)의 딸 온양 정씨이다. 첫째 아들은 민성(閔垶)이고, 둘째 아들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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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백운면은 진안군의 가장 남단에 위치한 면이다. 서부는 성수면, 서북부는 마령면, 북부는 진안읍, 동부와 남부는 전라북도 장수군, 남서부는 전라북도 임실군과 접한다. 백운면의 지명은 옛 백운동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백운면은 본래 마령현의 지역으로 마령현 남쪽에 있다하여 남면(南面)이라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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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부귀면은 진안군의 서부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는 진안군 정천면, 동남쪽으로는 진안군 진안읍, 남쪽으로는 진안군 성수면·마령면, 북쪽으로는 전라북도 완주군과 접한다. 부귀면의 지명은 부귀산에서 유래되었다. 부귀산이라는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현의 북쪽 5리에 있는 진안의 진산(鎭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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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작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고지도. 『비변사 호남지도』 「진안·용담현」 지도는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작한 호남 지방의 지도책 중 지금의 진안군에 해당하는 진안현과 용담현 지도이다. 이 지도는 1739년(영조 15)에서 1750년(영조 26)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채색 필사본이며 총 7책으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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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주변의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진안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중간 지역에 위치해 있는 산지 지역이다. 군 경계 및 면 경계도 대부분 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진안군에 분포하는 산지는 산줄기에 따라서 금남 호남 정맥·금남 정맥·호남 정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진안군의 산지 분포는 크게 금남 호남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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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가 정립했던 시대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진안 지역에 대한 기록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사기』인데, 이 역시 시기는 백제 말 이후부터로 한정되며, 또한 내용면에서도 매우 단편적 사실만을 기록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금의 진안군은 당시 백제의 영토로서 난진아현(難珍阿縣) 또는 난지가현(難知可縣)으로 불렸다. 백제가 멸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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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상전면은 진안군의 중앙에 위치한다. 서북쪽으로는 정천면, 동북쪽으로는 안천면, 동쪽으로는 안천면, 남쪽으로는 진안읍과 접한다. 상전면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부터 있던 상도면(上道面)과 탄전면(呑田面)을 일제 강점기에 통합하면서 두 면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상전면은 본래 진안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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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성수면은 진안군의 남서부에 위치한다. 서북부는 전라북도 완주군, 서남부는 전라북도 임실군, 동부는 마령면, 동남부는 백운면과 접한다. 1914년 일서면과 이서면 2면과 임실군 하북면의 횡암리 일부를 병합하면서 인근 성수산의 지명을 이용하여 이름을 붙였다. 성수산은 성수면 도통리·용포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생남산이라고도 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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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후 귀족들도 성을 사용하게 되다가, 전체 국민들도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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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귀상이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 수행굴을 다녀와서 지은 기문. 유현재(猶賢齋) 조귀상(趙龜祥)[1645~1712]은 선산 부사(善山府使)와 무주 부사(茂朱府使)를 지냈다. 문집으로는 『유현재집(猶賢齋集)』 2권이 있다. 조귀상이 선산 부사 시절에 선산의 양가 규수인 향냥(香娘)이 남편에게 핍박받고 숙부에게 개가를 강요당하자 연못에 빠져 죽은 일화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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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고대로 올라갈수록 진안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문헌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 시대와 고대 그리고 중세를 잇는 교량인 후삼국 시대 진안의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만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몇 가지 시사점을 갖는 차원에서 진안의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진안의 역사와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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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왜구가 침입한 사건. 왜구(倭寇)는 삼국 시대부터 출현하였지만, 고려 시대에는 고종(高宗) 때부터 시작하여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빈번하게 침략하였다.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재위 1349~1351] 이후 1392년(공양왕 4)까지 약 40여 년 간이며, 그 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 간[1374~1388]에 가장 극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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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포동과 반룡리를 병합할 때 ‘반룡’과 ‘포동’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용포리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말 진안군 이서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외리·하외리·포동·반룡리를 병합하고 용포리라 하여 진안군 성수면에 편입하였다. 진안군과 전라북도 임실군 사이의 협곡에 길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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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숙박 시설. 원은 역의 기능을 보조하는 교통·숙박 시설로, 역을 이용할 수 없는 일반 여행객들이나 공물 및 노비 신공 운반자들의 숙식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시설이었다. 고려 말에는 국가에서 원에 새로운 인호(人戶)를 배정하고 토지를 지급하는 등 원의 운영이 체계화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에는 각 도와 각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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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와 고려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월량현(月浪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으로 지명을 정하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월량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에서 진안현의 연혁을 상고하면서 이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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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공자 이래 발달한 유학과 관련된 전반적인 활동. 유교(儒敎)는 공자[B.C. 551~B.C. 479]가 창시한 사상, 혹은 학문 체계를 뜻하며 유학(儒學), 유가(儒家), 유도(儒道)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절대자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절대자의 위치에 조상신을 자리하게 하면서 조상에 대한 효(孝)를 강조하였다. 효는 유교의 기본 원리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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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비. 1867년(고종 4)에 진안 현감(鎭安縣監) 이복신(李復信)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세운 비석이다. 이복신(李復信)은 1867년(고종 4) 1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872년(고종 9) 6월에 이임하였다. 1867년(고종 4)에 이복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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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이승소(李承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송덕비이다. 이승소는 1850년(철종 1) 7월에 진안 현감(鎭安縣監)으로 부임하여 1853년 1월에 용담 현령으로 전임되었고 1856년 7월에 이임하였다. 1855년(철종 6)에 이승소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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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진안군은 진안읍을 비롯하여 용담면·안천면·동향면·상전면·백운면·성수면·마령면·부귀면·정천면·주천면의 11개 읍면과 77개 법정리, 303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진안 지역은 동쪽으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백두 대간, 서쪽으로는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호남 정맥과 주화산에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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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안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재지 사족은 향촌의 지배 세력으로 수도에서 관직에 종사하다가 국가 변란기 또는 정치적 변혁기 등 특정 시기에 본향(本鄕)으로 낙향한 가문과 다른 지역으로부터 처향(妻鄕)·외향(外鄕) 등의 이유로 이주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한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6세기 중·후반부터 향촌 사회에서 중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과 사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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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흥선 대원군이 주도 하여 편찬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고지도. 18세기 조선 사회는 각종 문물제도가 정비되고, 농업 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졌으며,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실학은 물론 문학과 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었다. 그러나 19세기가 되면서 세도 정치와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정치는 물론 민생까지도 혼란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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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조병섭(趙秉燮)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조병섭은 1857년(철종 8) 7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그 해 11월에 수원 판관(水原判官)으로 이임하였다. 이듬해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영세 불망비를 세웠다. 진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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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진안 지역은 조선 건국 후 진안현(鎭安縣)과 용담현(龍潭縣)의 2현으로 재편되었다. 진안 지역은 웅치 전투, 기축옥사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조선 시대에 용담현은 본래 청거현(淸渠縣)으로 금산의 속현이었는데 1313년(충선왕 5) 용담현으로 개칭되면서 독립하였다.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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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조연명(趙然明)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조연명은 1834년(순조 34) 1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836년 2월에 이임하였다. 1837년(헌종 3)에 조연명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모성 애사비를 세웠다. 진안군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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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종교는 역사 문화적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고대 시대에 중국이나 인도 등으로부터 전래된 불교·유교 등의 종교이다. 둘째는 조선 후기에 전래된 천주교의 전래 및 개신교의 확산이다. 셋째는 조선 말기 정치적 격변과 서학의 전래 및 일제 강점 시기 등에 대응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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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의 역사와 실상을 기록하여 진안 향교에서 발간한 향토지. 진안군은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난진아현으로 월랑이라고도 불렸으며, 통일 신라 시대에는 757년 진안으로 개칭하여 장계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전주의 속현으로 감무를 두었으며 1391년 공양왕 3년에는 마령현까지 겸무토록 하여 월랑현이라고 부르고 현령을 두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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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농민군과 일본군·관군의 전투. 1894년 12월 10일 농산읍(農山邑)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한 동학 농민군이 진안 방향으로 퇴각하자 백목성태랑(白木誠太郞) 중위가 지휘하는 일본군이 이를 포착하고 진안으로 진격하였다. 일본군이 고산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배후에 있는 진안의 동학 농민군을 사전에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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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향교.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진안 향교는 1414년에 창건됐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1601년에 중건하였다. 1636년에 현 위치로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진안 향교는 진안읍 군상리 향교길에 있다. 진안읍의 중앙을 통과하는 중앙로를 이용하여 동쪽으로 진출하다가 상림천을 통과하면 바로 좌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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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전라도 진안현의 통치를 담당한 지방관. 현감이란 수령(守令)으로 총칭된 지방관의 하나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현의 규모에 관계없이 지방관은 모두 현령(縣令)이라 불렀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 이르러 큰 현에는 영(令)이, 작은 현에는 7품의 감무(監務)를 두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초기까지 계속되다가 모두 현감으로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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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진안군은 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으로 남동쪽으로 전라북도 장수군, 북동쪽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서쪽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남서쪽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북쪽으로 충청남도 금산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수리적(數理的) 위치는 동경 126°16′[동향면 학선리]~127°38′[성수면 중길리], 북위 35°31′[백운면 신암리]~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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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진안군의 동남쪽에 있는 진안군의 소재지 읍이다. 동쪽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동향면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성수면·부귀면, 남쪽으로는 마령면·백운면과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상전면·정천면과 접해 있다. ‘진안’의 뜻은 원래 소란스럽고 불안정한 상태를 진압시킨다는 뜻인 ‘진무(鎭撫)’와 같은 뜻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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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편찬된 향토지. 『진안지』[1959]는 1959년에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 향교에서 간행한 진안군의 연혁·지세·풍토·고적·인물 등 60여 항목을 소개한 향토지이다. 『진안지』[1959]는 1959년에 진안 향교와 용담 향교가 공동으로 발행하였으며, 1924년에 간행된 갑자판을 수정 없이 그대로 전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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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진안현(鎭安縣)의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보면, 현재의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난진아현(難珍阿縣) 또는 월량현(月良縣)이었고, 이 지역을 신라가 장악한 후 767년(경덕왕 16)에 진안현(鎭安縣)으로 개정하면서 벽계군(壁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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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진안현 수원 백씨의 고문서. 진안 역사 박물관에 소장된 「진안현 수원 백씨 고문서」는 1786년부터 1901년까지의 준호구, 호구 단자, 신호적, 소지, 서목 등 다양한 문서 약 28건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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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편찬된 읍지. 『진안현읍지』는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읍지로 1791년(정조 15)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진안현읍지』의 정확한 편찬 연대는 미상이지만 그 안에 실린 선생안(先生案)[역대 수령 명단]의 기록이 1791년(정조 15)까지 기재된 것을 감안하면 그 무렵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진안현읍지』의 편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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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 역사 박물관에 있는 진안현 천안 전씨의 고문서. 진안현 마령면에 살았던 유학 전상흠(全尙欽) 가문의 고문서로서 1801년부터 1888년까지 작성된 8장의 호구 단자와 준호구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 3년마다 호적을 작성했는데, 호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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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살고 있었던 토착 성씨. 토성(土姓)이란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성씨에 대한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진안에 토성(土姓)으로 이(李)·전(全)·백(白)·한(韓)·유(庾)의 5개 성씨를 기록하고 있으며, 진안의 속현이었던 마령(馬靈)에는 한(韓)·송(宋)·장(張)·가(價)[어떤 본에는 가(賈)로 되었다.]의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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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에 살고 있는 정상렴이 소장한 고문서. 평장리 정상렴 소장 고문서는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이서면[성수면] 좌우개리 등지에 거주하였던 동래 정씨 호적 문서이다. 호구 단자란 호주(戶主)가 각 개인의 호구 상황을 작성하여 관청에 제출하는 문서로 오늘의 호적 신고서이다. 조선 시대에는 매 3년마다 호적을 작성했는데, 호주는 자신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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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 사상은 전통적인 지리학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는 경험 과학이다.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기반으로 주역의 체계를 주요한 논리 구조로 삼으며, 추길피흉(追吉避凶)을 목적으로 하는 상지 기술학(相地技術學)이다. 전통 시대에 효(孝)의 관념(觀念)이나 샤머니즘과 결합되어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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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편찬한 『해동지도』에 수록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고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조선의 각 도·군·현을 그린 지도이다. 경기도, 해서 전도 및 관서 전도, 관동 전도 및 북관 전도, 서북 피아 양계 전도, 영남 전도, 호서 전도, 호남 전도, 대동 총도가 차례로 1책으로 묶여 있다. 전라도 지도책에는 전라도 전도, 주기, 각 군현 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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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투항 왜인을 진안현에 나누어 거주하게 한 일. 조선 초기 왜구 대책의 실시와 식량의 부족 등 생활고로 인해 조선에 투항하는 왜인이 증가하였다. 조선에서는 향화왜인(向化倭人)이 흥리왜인(興利倭人)[조선을 오가며 무역에 종사하던 왜인]과 서로 왕래하는 폐단이 발생하자 향화왜인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 지방에 나누어 거주시켰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진안 지역에도 만시라(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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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진안군은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 지역에 있어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지주들의 수탈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비록 거대 지주들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중소 지주들이 진안군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1943년에 조선 총독부는 진안군에 4개의 저수지[반월제·포강제·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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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호족이란 주로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의 사회 변동기에, 변동을 주도한 계층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진안 지역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문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당시 진안과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진안 지역의 호족 세력을 고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