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864 |
---|---|
한자 | -朱川鄕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엽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 지역에서 향민들이 자치적으로 만든 향약 관련 전적.
[개설]
전라북도에서는 정읍 고현 내 향약과 남원 원동 향약이 가장 오래 되어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주천 향약의 경우 『주천 향약서』에 1700년대 광산 김상원이 창립하고 김기열이 글을 지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주천 지역 「사립 화동 학교 설립 청원서」[이병항 찬]의 내용 중에 있는 “금년 봄에 본 면 향약 부속학교로 다시 개교를 하고 규칙과 규정은 이전을 따랐으니 ……” 등의 내용으로 볼 때 1908년까지 향약 활동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저자]
1826년에 간행된 향약서를 쓴 안사문(安思文)은 “춘수당 김공(春睡堂金公)[김상원(金相元) 추정] 국빈씨(國賓氏) 여지외우야(余之畏友也)”라 하였고, 1900년 간행된 「김태현 서 향약문 후(金泰鉉書鄕約文後)」에 “오향지유약 유여증왕고(吾鄕之有約維余曾王考)[증조고] 춘수공지소창야 기문종조(春睡公之所刱也其文從祖) 용호공(龍湖公)[김기열(金箕烈)] 고거(考據)”라 하여 김상원(金相元)이 처음 세웠고 김기열이 글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로는 안사문(安思文), 김기열(金箕烈)[김중정의 7대손, 1826년 『주천 향약』 서문 집필], 김태현(金泰鉉)[1847~1919, 1900년 향약문 후기 집필], 이덕응(李德應)[1866~1949], 윤충하(尹忠夏)[1924년 『주천 향약』 서문 집필], 이상학[1924년 『주천 향약』 서문 집필] 등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주천 향약』은 1826년에 순흥 안씨 안사문(安思文)과 광산 김씨 김기열(金箕烈)이 쓴 향약 서문이 남아 있어 이 시기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00년에 김태현(金泰鉉)이 쓴 향약문 후기에 「향약 절목」이 증간되었다고 하고, 1925년 광산 김대현(金大鉉)이 이덕응(李德應) 서문과 윤충하(尹忠夏), 이상학의 서문을 보면 이 시기에 목활자본으로 와룡암에서 증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주천 향약』의 크기는 세로 18㎝, 가로 30㎝이며, 표지에는 ‘향약 절목’이라 쓰여 있다. 매수는 21매[42쪽]이며, 목활자본이다.
[구성/내용]
1826년 간행된 「향약 서기」[안사문, 김기열]가 남아 있고, 향약 절목 4개항과 향약 범례·후기가 있다. 그리고 정상호 등 후원자 80명의 명단 등이 있다.
1900년 증간된 향약서에 적힌 김태현의 서는 1826년 간행된 「향약 서기」를 이었으며, 1925년에 다시 김대현이 이덕응의 서문과 윤충하와 이상학의 서문을 받아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주천 향약은 전라북도 동부권[무주군, 장수군, 진안군]에서 1700년대 최초로 설립된 향약으로 태인의 ‘고현 향약’, 남원의 ‘원동 향약’ 등과 달리 징분질욕, 방성원색, 부호예양, 습례명수, 능천약신, 능흥리제해, 능거관거직 등의 내용이 실려 있어 덕업 상권에 중점을 두고 실천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1908년 ‘주천 향약계’ 기금을 사립 화동 학교에 기증하여 향약 부설 학교로 개교하였다는 사실은 서지학적으로 특이한 사례라 하겠다.
[의의와 평가]
『주천 향약』은 1700년대에 전라북도 동부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되어 3차례 향약집을 간행하였다. 한말 화동 학교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1908년 전 재산을 사립 화동 학교에 기증하여 향약 부설 학교를 개교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주천은 일찍부터 군자지향이라 전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향약 4개 덕목 중 타 향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징분질욕(徵忿窒欲) 등 7개 항이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