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 병자호란 으로 임금이 삼전도 에서 항복하자 김중정(金重鼎) 은 한양 을 떠나 주천면 주양리 주자천 유역에 와룡암(臥龍庵) 을 건립하여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와룡암 은 전라북도 동부 지역 최초의 학당으로 300여 명의 제자들이 배...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에 있는 운장산(雲藏山) 일대에서 활동하였던 민족 종교. 김용배(金庸培) [1876~1941]는 1885년경 김치인 으로부터 남학 의 도를 전수받았다. 이후 1894년 10월 17일에 김치인 은 제자 명봉 김용배 를 불러서 의발을 전수해주고 더욱 힘쓰라고 격려하였다. 김치인...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주양 교회 는 지역 복음화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양 교회 는 1922년 9월 22일 미국인 선교사 보이열 목사가 4명의 인근 지역 신도들과 함께 방문하여 전도 강연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 마을 김택수 의 집에서 기도...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운장산 일대에 포교된 신종교인 남학 과 금강 불교 와 관련된 가사. 남학 가사 는 『금강 불교 발원문』 에 수록되어 있는 한글 가사이다. 『금강 불교 발원문』 은 필사본으로 작자와 저작 시기가 미상이다. 따라서 남학 가사 의 저작 연대도 정확히 알 수...
... 은 그들의 사상을 접한 후 수도를 시작하였다. 그는 종교적 신념과 도덕적 윤리를 토대로 어려운 민생의 구심적 역할을 하면서 태평성대를 열고자 하였다. 1893년까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김치인 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이 발생하자 수천 명에 달하는 남학군을 조직하여 사회 운동을 통해 창생을 구제하고자 시도하였다. 그...
... 3월 25일 진안읍 의 장날에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오전부터 수백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이루어 행진을 하자 장꾼들도 여기에 합세하였다. 4월 3일에는 주천면 주양리 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 만세 운동을 시작하여 그날 밤 10시 무렵에도 다시 주민과 학생 60여 명이 마을 앞에서 횃불을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4월 6일에는 ...
...20; 진안 지역의 만세 운동은 3월 25일의 진안읍 장날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주천면 · 마령면 · 성수면 등으로 이어졌다. 만세 운동이 끝난 후에도 그 영향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이루어 행진하자 장꾼들도 합세하였다. 4월 3일에는 주천면 주양리 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만세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주양리 에는 화동 학...
... 진안면 에 설립되었다. 이후 마령면 [1918년]· 정천면 [1922년]· 주천면 [1923년]· 안천면 [1925년]· 백운면 [1927년]· 부귀면 [...5일 오전에 수백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자 장꾼들도 여기에 합세하였다. 주천면 주양리 에서는 유지 김주한 등이 만세 운동을 계획하여 사립 화동 학교 [지금...
...운동을 계획하거나 또는 산발적인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 중 주천면 의 청년 김영필(金永弼) 등은 『대한민보』 , 『독립신문』 등 독립운동 ... 무주군 등지에 배포하면서 활동을 계속하다가 붙잡혔고, 이듬해인 1920년 1월에는 주천면 의 면서기였던 김규현(金奎鉉) 이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이후 엄혹한 일제...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에 있는 수당 이덕응 의 초상화. 수당(修堂) 이덕응(李德應) [1866∼1949]은 덕흥 대원...은 후 낙향하여 지방에 300여 명의 인재를 양성하며 1919년 고종 이 승하하자 주천면 대불리 에 황단을 설단하고 황단제를 봉행하였다. 1922년에 13도 도순강장에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