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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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집필자 | 김성식 |
채록 시기/일시 | 1998년 5월 15일 - 「매화 타령」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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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원평지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성격 | 민요 |
토리 | 육자배기 토리|남부 경토리 |
출현음 | 미, 라, 시, 도, 레 |
기능 구분 | 노동요[민요] |
형식 구분 | 선후창 방식 |
가창자/시연자 |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오길현[63세, 남, 앞소리]|황삼주[59세, 남, 뒷소리]|김문선[60세, 남, 뒷소리]|최원석[58세, 남, 뒷소리]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
[개설]
「매화 타령」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인다. 특히 두벌매기를 하면서 하루 작업 분량이 얼마 남지 않은 석양판에 부른다. 「매화 타령」이라는 명칭은 뒷소리의 ‘~ 매화로고나’에서 비롯된 명칭인데, 경기 민요 「매화 타령」은 놀 때 부르는 유희요인 반면에 원평지 마을의 「매화 타령」은 구체적인 노동의 현장에서 일정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불리는 노동요라는 점에서 두 「매화 타령」이 명칭은 같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매화 타령」은 1998년 5월 15일~16일에 마령면 원평지 마을에서 토박이인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와 오길현[63세, 남, 앞소리], 황삼주[59세, 남, 뒷소리], 김문선[60세, 남, 뒷소리], 최원석[58세, 남, 뒷소리] 등으로부터 채록하였다. 앞소리의 가창자인 황덕주는 육자배기 토리에 능했고, 오길현은 기운찬 성음이 특징이었다.
평생을 농사일에만 종사한 황덕주는 근동에서 소문난 앞소리꾼이었던 그의 선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오길현은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는데 마을의 토속 민요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깊다. 오길현은 소리하는 항성이 크고 우렁차며 매우 신명이 있다. 농요는 젊어서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며, 마을 농요가 마지막으로 불리던 때를 그의 나이 스물 서너 살 때쯤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구성 및 형식]
「매화 타령」은 손으로 두벌매기를 하면서 하루 작업 분량이 얼마 남지 않은 석양판에 주로 부르는 노래이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구를 받아 부르는 선후창 방식이다. D음을 밑음으로 하고 G음이 중심음인 ‘미 라 시 도 레’의 미음계, 미음을 떨고 라음은 평으로 내며 시음은 단2도 윗음인 도음에서 꺾어 내리는 전형적인 남도 계면조 선법에 해당된다. 라음으로 종지한다.
「매화 타령」은 조금 빠른 중중머리 장단이 내재되어 있다. 창법상으로는 음 끝에 힘을 주고 음을 조금씩 끊어 부르기 때문에 힘차고 흥겹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내용]
「매화 타령」은 메기는 소리[앞소리]와 받는 소리[후렴]로 구성된 노래이다. 먼저 앞소리꾼이 “에야 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헤헤 에루아 매화로구나”라고 메기면 나머지 일꾼들이 모두 함께 “에야 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헤헤 에루아 매화로구나”로 똑같이 받는다. 그러면 다시 앞소리꾼이 “팔랑 팔랑 홍갑사 댕기 에루아 곤때도 안 묻어 사주단자 온다네”라고 메긴다. 그러면 다시 뒷소리꾼이 앞에서 받은 후렴을 그대로 받아서 부른다. 메기는 소리 사설은 “노자 좋다 젊어서 놀아 늙고 병들면 나 못노느니라”, “일락서산 해 떨어지고 월출동녘에 달이 돋아 온다네”, “산천초목은 젊어나 가는디 우리 청춘은 늙어만 가네”,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이내 가슴에 수심도 많다네” 등이다.
[현황]
원평지 마을의 논매는 소리가 농경 현장에서 사라진 시기는 1970년대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제초제의 보급으로 더 이상 집단 김매기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화 타령」을 부를 수 있는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그 후에도 논매는 민요는 가창되었다. 1990년에 MBC 한국 민요 대전을 통해서 음반으로 녹음되었고, 전라북도립 국악원에서 녹음 및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또 7월 백중 술멕이 때는 여흥으로 간혹 부르곤 했다. 다만 현재는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들이 매우 고령인데다 건강까지 좋지 못하고, 또 「매화 타령」을 부를 기회가 거의 없어 더 이상의 자연 전승은 힘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