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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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집필자 | 김성식 |
채록 시기/일시 | 1998년 5월 15일 - 「양산도」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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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원평지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성격 | 민요 |
토리 | 육자배기 토리|남부 경토리 |
출현음 | 헤에 헤에야하 헤헤에헤 허 허기나 양산도로다 하아[메기는 소리]|헤에 헤에야하아 헤에헤에 헤헤 허 허기나 양산도로다 하아[받는 소리] |
기능 구분 | 노동요[농요] |
형식 구분 | 선후창 방식 |
가창자/시연자 |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오길현[63세, 남, 앞소리]|황삼주[59세, 남, 뒷소리]|김문선[60세, 남, 뒷소리]|최원석[58세, 남, 뒷소리]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를 할 때 부르는 민요.
[개설]
「양산도」는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들노래]이다. 「양산도」를 부르는 시기는 김매기 과정 중에서 특히 아침나절에 새참과 농주로 휴식한 뒤에 부른다. 이 노래는 절도가 있으면서 매우 호방함을 느끼게 한다.
[채록/수집 상황]
「양산도」는 1998년 5월 15일~16일에 마령면 원평지 마을에서 토박이인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와 오길현[63세, 남, 앞소리], 황삼주[59세, 남, 뒷소리], 김문선[60세, 남, 뒷소리], 최원석[58세, 남, 뒷소리] 등으로부터 채록하였다. 앞소리의 가창자인 황덕주는 육자배기 토리에 능했고, 오길현은 기운찬 성음이 특징이었다.
평생을 농사일에만 종사한 황덕주는 근동에서 소문난 앞소리꾼이었던 그의 선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오길현은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는데 마을의 토속 민요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깊다. 오길현은 소리하는 항성이 크고 우렁차며 매우 신명이 있다. 농요는 젊어서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며, 마을 농요가 마지막으로 불리던 때를 그의 나이 스물 서너 살 때쯤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구성 및 형식]
「양산도」는 논농사 중 김매기 소리로 주로 아침나절에 부른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구를 받아 부르는 선후창 방식이다. 「양산도」는 두 개의 음계가 사용되는데 하나는 ‘솔 라 도 레 미’의 솔음계이고, 또 하나는 ‘미 솔 라 도 레’의 미음계이다. 양산도는 솔음계의 도음으로 시작하고, 솔음에서 장2도 상행하여 라음으로 종지한다. 이런 형식의 민요를 남부 경토리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장단은 세마치류에 가깝다.
[내용]
원평지 마을은 진안의 일반적인 자연 지리적 조건과 상당히 구별된다. 진안군은 평균 경지 면적 비율에서 밭이 5.7%이고 논이 7.9%일 정도로 산간 지대에 속한다. 그러나 원평지 마을이 속한 마령면은 경지 면적 비율에서 밭이 7.3%이고 논이 13.1%로 일대에서는 경지 면적이 가장 넓다는 특성이 있다. 특히 원평지 마을은 마령면에서도 경지 면적이 세 배에 가까울 정도로 너른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 지리 환경이 논농사 민요가 전승되는 주요 배경이다.
「양산도」는 메기는 소리[앞소리]와 받는 소리[후렴]로 구성된 노래이다. 먼저 앞소리꾼이 “헤에 헤에야하 헤헤에헤 허 허기나 양산도로다 하아”라고 메기면 나머지 일꾼들이 모두 함께 “헤에 헤에야하아 헤에헤에 헤헤 허 허기나 양산도로다 하아”라고 받아서 노래한다. 이런 식으로 메기고 받는 구조로 가창되는데, 앞소리 사설은 대략 “연계가 논다 병아리가 논다 금잔디 밖에서 연계가 논다”, “양산을 가자 양산을 가자 모랭이 돌아서 양산을 가자”, “간디 족족 정들여 놓고 밤질 걸기가 허허 난감허네”, “오늘 해도 다 되야가고 골목골목이 연기만 나네” 등이다.
[현황]
원평지 마을의 ‘논매는 소리’가 농경 현장에서 사라진 시기는 1970년대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제초제의 보급으로 더 이상 집단 김매기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산도」를 부를 수 있는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그 후에도 논매는 민요는 가창되었다. 1990년에 MBC 한국 민요 대전을 통해서 음반으로 녹음되었고, 전라북도립 국악원에서 녹음 및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또 7월 백중 술멕이 때는 여흥으로 간혹 부르곤 했다. 다만 현재는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들이 매우 고령인데다 건강까지 좋지 못하고, 또 「양산도」를 부를 기회가 거의 없어 더 이상의 자연 전승은 힘든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진안군 마령면은 예전부터 생활권이 진안읍 보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나 관촌에 가깝다 실제 마령 지역에서 “백마성[백운면, 마령면, 성수면]은 진안과 다르다”는 말을 곧잘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자연 환경과 생활권의 차이로 진안군 동남부의 특성은 전라북도 무주군이나 장수군의 보편적인 선율 형태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원평지 마을의 「양산도」를 비롯한 논매는 소리의 유형에서 변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원평지 마을 민요는 솔음계인 남부 경토리와 미음계인 전형적인 육자배기 토리 선율이고, 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진안군 마령면은 전라북도 지역에서 육자배기가 북상하는 곳의 마지막 종착지이며, 동시에 순창군이나 남원시 등 동남부권 민요의 영향권에도 끼어있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