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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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造包-皇壇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엽 |
시작 시기/일시 | 1926년 3월 14일 - 조포 마을 황단제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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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조포 마을 황단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조포 마을 |
성격 | 제례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3월 14일 낮 12시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조포 마을에 있는 황단에서 순종을 추모하며 지내는 제례 의식.
[개설]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조포 마을 황단제는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인 융희 황제[순종, 1907~1910]를 모시는 제례로 진안군 주천면 화양산 황단제 보다 늦게 설단 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10년 융희 황제[순종] 재위 4년 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한일 병탄이 이뤄졌다. 그리고 1926년 3월 14일 순종이 승하하였다. 당시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유림 전익서(田益西)는 수당 이덕응의 제자였는데 국장(國葬) 이후 비분강개함을 달래며 구봉산 아래 천황사 부근에 단을 모시고 일천정성(一天精誠)을 다 바쳐서 손수 제수를 지어 올리며 앙천호곡(仰天號哭)하였다. 이후 진안 지역에서 뜻을 같이 하는 순종만과 윤학동 등이 동참하면서 54명이 뜻을 모아 500여 평의 제전을 마련하였다. 1976년 3월 14일에는 순종 서거 50년을 맞아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조포 마을 서북쪽 약 500m, 천황사와는 약 300m 거리의 산골짜기에 전익서 등이 쌓은 황단이 있다. 주변의 화강암 돌로 제단을 만들었는데 가로 1.5m, 세로 0.8m, 높이 0.4m 정도이다.
[절차]
매년 융희 황제의 기일인 음력 3월 14일 정오에 제를 지낸다. 천황사 부근에 쌓은 황단에 제물은 백설기 떡 한 시루, 삼색실과 전부침, 제주 등을 진설하고 최고 연장자 순으로 3인을 그해의 제관으로 정하여 4배를 올린다. 제례는 제관 선정으로부터 시작되는데 타 제례와는 달리 최 연장자로부터 연장 순으로 3인을 그해의 제관으로 정하는 것이다. 제례는 일반 삼헌례와 마찬가지로 진행되지만 특이한 점은 제관도 4배를 올리고 황단계 제원 일동도 4배를 올린다는 점이다.
음력 3월 14일 낮 12시를 지나 오시(午時)에 모시는 황단제는 원래 원장(元長), 유사, 재무, 총무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체로 원장이 주관하여 모신다.
[축문]
조포 마을 황단제는 축문이 있으며, 별도의 융희 황단 결사문(隆熙皇壇結社文)과 융희 황제[성군] 추도문이 있다. 축문은 다음과 같다.
단군기원(檀君紀元) 간지(干支) 3월(月) 14(일日) 일진(日辰)/ 초모신(草茅臣) 모 감소고우(敢昭告于)/ 융희성군 폐하지단전일복이(隆熙聖君 陛下之檀前日伏以)/ 태사정필 십유삼언 만세황통(太史正筆 十有三言 萬世皇統)/ 차기본원 통천황승 통순치국(此其本原 統天皇承 統殉治國)
문여수천 위천하사 지의지령(文與輸天 爲天下師 至誼至靈)/ 의선불개 송백창창 두화익급(義禪不改 松柏蒼蒼 斗化翊及)/ 비물계수 살인무신 사일불용(飛物屆首 殺人無辛 斯一不鏞)/ 자시불행 만방귀후(自是不行 萬邦歸厚)/ 서사강감(庶賜降鑑)
[부대 행사]
조포 마을 황단제는 특별한 부대 행사 없이 제례를 마치면 식사를 하고 행사를 마친다.
[현황]
이덕응의 제자 전익서가 설단하면서 시작된 조포 마을 황단제는 1926년 이후 매년 계속되었고, 1976년 3월 14일에는 융희 황제 서거 50주기를 맞아 추모비도 건립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농촌의 인구 감소로 세인의 무관심 속에 이제는 마을 행사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