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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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三宜堂 |
이칭/별칭 | 삼의당,삼의당 김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미 |
출생 시기/일시 | 1769년 - 김삼의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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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시기/일시 | 1801년 - 김삼의당 이주 |
몰년 시기/일시 | 1823년 - 김삼의당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3년 -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시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김삼의당 시비 건립 |
출생지 | 김삼의당 출생지 - 전라북도 남원 서봉방 |
거주|이주지 | 김삼의당 이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
활동지 | 김삼의당 시문창작지 - 전라북도 남원 서봉방과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
묘소 | 김삼의당 묘소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
성격 | 문인 |
성별 | 여 |
본관 | 김해(金海) |
[정의]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여류 문인.
[개설]
김삼의당은 남원에서 태어나 32세 때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살았던 조선 후기의 몰락 양반 여성 문인이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남편에 대한 애정과 기대, 일상생활 속의 일과 전원의 풍치 등을 260여 편의 한시와 문장으로 남겼다.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당호는 삼의당(三宜堂). 아버지는 연산군 때의 학자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인 김인혁(金仁赫)이고 남편은 진양인(晉陽人) 담락당(湛樂堂) 하립(河氵昱 )이다.
[활동 사항]
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은 전라북도 남원의 서봉방(捿鳳坊)[현 교룡산 서남 기슭]에서 몰락한 사족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한글로 된 『소학』을 읽고 문자를 배워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섭렵했다.’고 한다. 스스로 글공부에 노력하여 여자로서의 부덕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1786년(정조 10) 18세가 되던 해에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한 담락당 하립과 결혼하였다. 본가와 시가가 모두 몰락한 양반 가문이었기 때문에 김삼의당은 남편의 과거 급제를 평생소원으로 삼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가세가 더욱 빈한해지자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서 1801년(순조 1) 32세에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진안에 살았다.
시부(媤父) 와 시형제 다섯이 모두 시문에 능하였기 때문에 엄격했던 유교 가문의 생활 규범 속에서도 삼의당은 시작(詩作)을 할 수 있었고 시를 인정받았다. 남편은 혼인 첫날밤에 화답시를 쓰는 등 일상생활의 애환을 시문으로 화답하던 시우(詩友)이기도 했다. 또한 삼의당은 시부모를 봉양하고 형제, 친척들에게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가문에서는 물론 인근에서도 부도(婦道)를 칭송하였다. 당호 삼의당(三宜堂)은 『시경』 도요시(桃夭詩) ‘의실의가재지자(宜室宜家在之子)’에서 따온 것이다.
[저술 및 작품]
1930년에 장사(長沙) 김기현(金箕現)과 승평(昇平) 정형택(鄭逈澤)이 원고를 모아 『삼의당고(三宜堂稿)』를 간행하였다.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1권은 시이고, 2권은 산문이다. 1권에 실린 시는 총 111편 253수이고, 2권에는 편지글 6편, 서(序) 7편, 제문 3편, 잡지(雜識) 6편 등 총 26편의 산문이 실려 있어 조선조 여성으로서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은 함양 오상철(吳相喆)이, 발문은 정형택이 썼다.
문집은 1950년 『조선 역대 여류 문집』[을유 문화사 발행]에 수록되었고, 1982년에 출판된 『김삼의당 시문집』[황안웅 번역, 제일사]이 있으며, 2004년에 『삼의당 김부인 유고』[이월영 역주, 신아 출판사]로 번역·출간되었다.
[묘소]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 남편 하립과의 합장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진안군 마이산 탑영제 호반가에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 부부의 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담락당·삼의당 기념 사업회에서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시비를 건립하였다. 한편 1991년 남원 문화원에서는 김삼의당의 출생지인 남원시 서봉방 교룡산 국민 관광 단지 내에 김삼의당 시비를 세웠다.